[Dog]에서 [Dogma]까지, 철자로는 두 글자가 늘었을 뿐이지만 김심야에게는 6년이 걸린 거리다. 개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얻은 견유(犬儒)학파는 세상의 관습과 권위를 비웃으며 살았다. 그 이름을 빌리자면 한국 힙합 신을 향해 날 선 말을 겨누던 무렵의 김심야는 견유에 가까웠다. 그리고 6년 뒤, 그는 교리를 뜻하는 단어를 앨범 제목으로 내걸었다. 두 단어는 철자만 닮았을 뿐 뿌리는 다르다. 그런데 정작 이 앨범에는 단단한 교리가 없다. 덴마크 감독들의 ’도그마 95’를 본떠 음악 버전의 십계명까지 써 두었지만,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가 끝까지 지킨 규칙은 단 하나다. 이 결과물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비추고 있는가.
다만 견유는 관습을 비웃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훈련, 아스케시스(askēsis)를 통해 덕에 이르려 했다. 김심야의 6년도 그렇게 읽힌다. 한때 시기와 질투를 동력 삼아 휘두르던 칼은 칼집에 들어갔고, 그 자리를 석가의 철학을 공부하며 나눈 자기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즐거워서가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계속하는 반복이 채웠다. 날 선 래퍼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개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수행으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그 길을 곁에서 함께 걸은 건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 cjb95와 ccr, Mount XLR이었다.

그래서 [도그마]는 정답을 건네는 앨범이 아니다. 건너뛸 수 없는 은색 플레이어로도 나온 이 앨범에서 그가 바란 건, 음악이 흐르는 사이 어느 순간 음악은 지워지고 듣는 사람만 남는 경험이다. 아래의 대화는 개에서 교리까지, 그 사이를 천천히 따라가 본 기록이다.
Q. 2020년에도, 이번에도 반응은 안 보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발매 뒤에 [도그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어보신 적은 있나요?
김심야(이하 김): 없습니다.
Q. 일부러 놓아두시는 건가요?
김: 옛날에는 이번과 조금 달랐어요. 완성하고 꽤 시간이 지난 뒤에 발매됐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안 들었어요. 다시 들으면 벌써 살짝 오그라드는 부분들이 생겨 버렸거든요.
이번 앨범은 한 1~2년만 지나면 다시 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발매되자마자 인터뷰며 스케줄이 많아서 진득하게 들을 시간 자체가 애초에 없었어요.
Q. [Dog] 이후 6년 사이에 “FRIENDS GO FOE”, EP [w18c], “WAY 2A HEAD”, [Bundle1.2]가 있었어요. [도그마]에 실린 소리 가운데 가장 오래전에 만든 소리는 무엇인가요?
김: 아마 “Zulu Love”의 초반부일 거예요. 그건 정말 엄청 옛날에 만든 거예요. 그래도 4~5년은 된 것 같아요.

Q. 그때는 어떻게 만들어진 곡이었나요?
김: “Zulu Love”는 제 기억으로는 앞부분이 cjb95라는 친구의 비트였어요. 뭔가를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라, “이거 해 볼래?” 해서 “그래” 하고 만들어진 곡이었어요. 그래서 앨범에 쓰일 거라는 생각도 없었는데, 앨범을 같이 만든 친구들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이 곡은 꼭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쓰게 됐어요.
Q. “Nature Boy”가 샘플링돼 있죠. 샘플을 꼭 넣자는 의견은 어떻게 나왔나요?
김: 다들 엄청 좋아했어요. 저는 그래도 빼자는 쪽이었는데, 저 말고는 빼자고 한 사람이 없어서요.

Q. 올해 1월 사운드클라우드에 데모 “ZULU TIME 2020”과 “100 DROPS - OG”를 먼저 푸셨어요. “100 DROPS”는 “HDI”가 됐고요. 발매보다 먼저 풀어놓은 이유가 있었나요?
김: 그 두 곡은, 예를 들어 [Moonshine]이나 빡센 래핑을 선호하시는 분들에게 하는 말 같은 거였어요. 제 딴에는 ‘이제 이런 앨범은 나오지 않을 거니까, 이런 걸 기다린다면 미안해. 미안하지만 포기해’ 하는 게 있었어요. 굳이 “HDI”의 원곡을 공개한 것도 ‘나는 여기서 이렇게 갈 거니까 그걸 좀 이해해 줘’ 하는 개념이었고요.

Q. 한 방송에서 ‘이렇게까지 가도 될까’ 싶은 데까지 갔다가 되돌렸다고 하셨어요. 어디까지 갔다가 되돌리신 건가요?
김: 제가 느끼기엔 굉장히 뷰리얼스러운 쪽이었어요. 보컬도 더 빼고 싶었고, 랩 앨범이라는 느낌을 훨씬 더 지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유럽 캠프에서 완성된 곡들 가운데 회사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며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한 곡들이 있었어요. 그 곡들로 트랙리스트를 짜려니 초반의 방향과는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수정을 하면서, 리듬이 좀 더 강조된 쪽으로 가자고 하게 됐어요.
Q. “WAY 2A HEAD”는 솔로 앨범의 방향을 미리 보여 주는 싱글로 소개됐는데, 앨범에서는 빠졌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김: 원래는 “WAY 2A HEAD” 같은 분위기의 곡들이 더 많이 있었어요. Blawan과 한 곡들도 같은 결이었고요. 그런데 만들다 보니 지금 버전으로 오게 됐고, 그때 이 곡들을 어딘가에 끼워야 하는데 제 딴에는 자리가 나지 않더라고요.
친구들과 한자리에서 만들어 버린 곡들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는 것 같았어요. 곡들은 일단 가지고 있으니, 다음 작업에서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된 것 같아요.

Q. ’도그마’라는 이름에서 1995년 덴마크 감독들의 ’도그마 95’가 떠올랐어요. 열 가지 규칙을 먼저 적고 그 안에서만 영화를 찍었죠. 작업할 때 정해 둔 규칙이 있었는지, 만들다 깬 규칙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김: 사실 제가 도그마 95의 십계명을 음악 버전으로 만들어 놓은 게 있어요. [도그마] 앨범을 할 때 어딘가에 쓰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만들어 놓았는데, 패러디 개념이다 보니 원작 십계명에서 최대한 살짝만 바꾸려고 한 거라 제가 동의할 수 있는 룰들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무조건 지키는 건 딱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이 결과물이 나를 얼마나 투영하고 있느냐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Q. 싱크의 문제군요.
김: 네, 그 문제인 거죠.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창작자들 중에는 본인이 하는 작업과 본인이 너무 안 어울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제 기준에서는 그런 작업을 흥미롭게 보기가 어렵더라고요. 좀 더 상품에 가까운 느낌이라서요.
"요즘 만든 거 있어?"
Q. [Dog] 때 하입비스트 인터뷰에서 cjb95(종빈), ccr과 ’섹터’라는 크루를 했고, 시모&무드슐라의 엄청난 팬이어서 모였다고 하셨죠. 그 앨범의 무엇에 끌렸고, 그게 지금 세 사람의 소리에 어떻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 그때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앨범은 어두운 분위기부터 랩까지, 지금 생각해 봐도 랩 앨범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들을 수도 있는 느낌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지금 깨달은 건데, 그게 제 현재 지향점이기도 하네요. 랩 앨범처럼 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게 너무도 앞서 있었죠. 또 어렸을 때 들었으니 훨씬 더 깊이 심취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기억에 남아 있어요.

Q. 일종의 쇼크였던 거네요.
김: 그렇겠죠. 전형적인 랩 스타일도 아니다 보니까요.
Q. 같은 인터뷰에서 시모 형을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는 입장이 돼 뿌듯했다고 하셨는데, 6년 뒤에는 그 친구들이 이번 앨범을 거의 통째로 만들었어요.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나요?
김: 일단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가 훨씬 뚜렷해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어도 거슬리지만 않으면, 거기에 제 보컬을 얹으면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전달했으니 됐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음악을 했지만 말을 계속한 것 같아요. 계속 말을 하고 생각을 전달했죠. 지금은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싶은지가 뚜렷해요.
Q. 친구분들도 그만큼 경험이 쌓였을 테고요.
김: 워낙 다들 테이스트가 좋으니까, 뭘 해 보자 하면 “요즘 만든 거 있어?”, “요즘 안 쓰는 거 있어?” 이렇게 출발해요. 대부분 들어보면 너무 좋고, 각자 내는 음악들도 들어보면 너무 좋으니까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Q. 사운드클라우드에 섹터 계정이 아직 남아 있더라고요. 섹터 시절에는 각자 무엇을 했고,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졌나요?
김: 섹터 때는 온라인 크루가 많던 시절이었어요. 다 같이 몇 번 모여서 보기는 했는데, 거의 친한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나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또 이미 진수 형(FRNK)과 하고 있었고요. 그런 시기여서 그때는 엄청 가깝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고, 그러다 조금씩 친해진 것 같아요. 종빈이가 좋은 링크 역할을 했고요.
광재(Mount XLR)는 사실 제가 공익을 시작하면서 친해졌어요. 그때 광재 작업실에 되게 자주 갔거든요. 그리고 종빈이가 사운드 서플라이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거기서 같이 하게 됐고, 종빈이가 뭘 할 때 항상 고맙게도 저를 찾거든요. “이거 해 볼래? 여기서 뭐 좀 해 줘” 하면서 이렇게 이어졌어요.

Q. 광재 님 작업실에 자주 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김: 광재가 그 당시에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저도 광재한테 모듈러 같은 걸 좀 배우고 싶었고, 광재도 앨범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고 싶던 시기였어요. 저는 공익 근무를 하고 있으니 좀 심심하기도 했고, 음악적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엄청 친해지게 됐죠.
Q. 이번 크레딧을 보면 작곡에 다섯 곡, 편곡에 아홉 곡 이름을 올리셨어요. 작곡에 이름이 들어간 곡들은 어떤 식으로 작업됐나요?
김: 되게 다양해요. “T-H-I-R-S-T-Y” 같은 경우에는 곡의 제일 처음 시작이 제가 쓴 데모였고, 그게 오혁 님을 거치고 광재를 거쳐서 완성됐어요. “Move My Feet”은 변주되기 전 부분은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만든 거고, 뒷부분은 서울에 와서 제가 쓴 걸 갖다 붙였어요.
요즘은 일단 곡을 써서 쟁여 놓고, 그걸 친구들이나 해외 프로듀서들한테 쫙 뿌려서 편곡해 봐 달라고 하는 식으로 작업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Q. 편곡을 맡길 때는 자유를 주는 편인가요, 구체적으로 주문하는 편인가요?
김: 거의 안 하고 그냥 보내요. 그걸 선호하는데, 그러면 아웃풋이 들쭉날쭉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에게 보낼지, 프로듀서를 되게 조심스럽게 골라요. ‘이 사람은 이런 걸 하는 사람이니까 이걸 보내면 이렇게 하겠지’ 하고 믿고, 아무 말 없이 보내는 거예요.
Q. 편곡은 받은 뒤에 어떤 식으로 참여하셨나요?
김: ’이 곡이랑 이 곡을 붙여야겠다’든지, ’여기서 이 소스만 뺄게’라든지 하는 부분이죠. 구조적인 부분, 사운드적인 부분, 디테일적인 것들이요.

Q. cjb95, ccr, Mount XLR(광재). 세 프로듀서는 스타일이나 힘을 주는 지점이 각각 어떻게 다른가요?
김: 각자 자기 걸 할 때는 어떤지 모르겠고, 세 명을 한 방에 놓았을 때 시너지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cjb95는 전혀 대중적인 걸 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포인트를 잘 캐치하는 것 같아요.
ccr은 확실히 리듬이에요. 풋워크를 해도 풋워크를 너무 잘하고, 힙합을 찍어도 힙합을 너무 잘 찍어요. 풋워크나 힙합의 드럼과 질감은, 제 기준에서는 세공되지 않은 거친 느낌을 살리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진짜 잘 살려요.
광재는 사실 저희 제주도 캠프에서 AI였어요. 거의 주문하면 그대로 출력되는 거죠. “야, 이거 좀 고쳐야 할 것 같은데” 하면요. 거기다 전반적인 무드는, 저는 결국 UK를 기반으로 한, 조금은 우울하고 어두운 감이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광재가 그런 분위기를 너무 잘 잡아요.
서로가 서로를 피드백하니까, 저희 넷이 모였을 때 진짜 장점만 서로 남겨 주는 것 같아요. 너무 멀리 간다 싶으면 나머지가 잘라 주고요.

Q. 광재 님과 작업하면 진수 형(FRNK) 생각이 나고, 옆에서 많이 훔쳐 온다고 하셨죠. 어깨너머로 무엇을 배우시나요?
김: 진짜 1차원적으로는 ’그 플러그인 좋다’일 수도 있고, 단축키일 수도 있고, ‘드럼을 이런 식으로 찍으면 더 빨리 찍을 수 있어’, ‘더 그루브가 살게 찍을 수 있어’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엄청 다양하죠.
무엇인가를 배우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으면서 주워듣는 거니까, 계속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 있을수록 많은 걸 배워요. 그래서 랜덤 뽑기처럼 배우는 것 같아요.
Q. [도그마] 작업 때는 친구분들과 같이 들으며 ‘이런 거 좋네’ 한 음악이 있었나요?
김: 딱히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친구들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본인들이 낸 것들을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돼요.

Q. 이번 앨범에서 연구하고 싶었던 건 디스토션 계열이라고 하셨고, 강한 컴프레션이 예전에 쾌감을 위해 부정적인 가사를 뱉던 감각과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그 감각이 가장 잘 들리는 곡이나 구간이 있을까요?
김: 제가 터치한 건 아니지만, “T-H-I-R-S-T-Y”의 보컬 없는 후렴이 그 예시인 것 같아요. 말이 없는데도 막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달할 수 있는 거죠.
Q. 디스토션은 이것저것 걸어 보면서 공부하신 건가요?
김: 그건 얼마큼 구길 것이냐의 문제예요. 디스토션 브랜드들을 연구하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디스토션이 몇 개 있는데 그 노브를 얼마큼 돌릴 것이냐 하는 개념인 것 같아요. 여기서는 디스토션이 없다가 여기서 갑자기 빡 들어가면 또 무엇인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어디에 얼마큼 써야 효과가 제일 좋은가, 그런 걸 생각해 보는 거죠.
"그들의 태도가 제일 새로웠어요"

Q. 트랙 배치는 처음으로 주변 피드백을 적극 받아들였다고 하셨어요. 누구의 말이 가장 컸나요?
김: 아무래도 회사의 의견이 제일 컸어요. 그런데 엄청 디테일한 요구 사항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와 제 친구들이 전반적인 걸 해 놓으면, 회사에서 “여기서 이 한 곡만 이렇게 해 보면 어때?” 하는 식으로 완성이 됐죠.
제가 느끼기에 회사의 역할은 결국, 멋있는 게 뭔지도 알면서 대중에게 다가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다는 거예요. 저는 대중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말 감이 안 오거든요. 이 둘을 다 인지한 상태에서 디렉션을 주시는 거니까, 어느 정도는 그냥 신뢰할 수 있는 거죠.
대중적인 것만 생각하는 회사였다면 죽어도 말을 안 들었을 텐데, 알면서도 이렇게까지는 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니까요. 그건 리즈너블하죠.

Q. Blawan은 직접 섭외를 부탁하신 건가요, BANA가 보낸 리스트에서 고르신 건가요?
김: 회사에서 이번에 유럽 캠프를 갈 건데 함께하고 싶은 프로듀서 리스트를 보내 달라고 해서, 그 리스트에 Blawan이 있었어요. 사실 될 줄은 몰랐어요. ‘설마 Blawan이 되겠어?’ 했는데 Blawan을 만나러 간다길래, 광재도 Blawan을 정말 좋아해서 “내가 Blawan 만나고 와서 Blawan의 스템을 너한테 줄 테니 한번 해 보자” 이러면서 갔었어요.
Q. Blawan은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어떤 점에 끌리셨어요?
김: 아마 그냥 디깅하다가 발견했을 거예요. 꽤 오래전이긴 한데, 워낙 리듬이 특이하고 질감이 특이하다 보니까요. 클럽 튠 중에 좀 어둡고 재미있는 걸 찾아야지 하면서 찾다가 발견했을 것 같아요.

Q. 도그마 세션의 Cid Rim과 Simo Cell도 직접 리스트에 넣으신 건가요?
김: Simo Cell도 제 리스트에 있었어요. Cid Rim은 회사에서 제 리스트를 기반으로 어울릴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뽑아 준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캠프 갔을 때는 그렇게 섞여 있었습니다.

Q. Cid Rim, Simo Cell과 작업하면서 음악적으로 열린 지점이 있었나요?
김: 확실히 느낀 건, 유럽 친구들은 음악을 만들 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자존감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확신이 되게 큰 것 같아요. 저는 곡을 쓸 때 예를 들어 한 곡에 트랙이 여덟 개인데 곡이 끝난 것처럼 들리면 뭔가 불안하거든요. ‘여덟 트랙으로 이 한 곡이 된다고?’ 하고요.
계속 그러는데, 옆에서 이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좋은 소스 하나 골라서 딱 해 놓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제가 들었을 때도 충분하고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깨려고 했던 것 같고, ‘듣기만 좋으면 됐다’ 하는 게 좀 생겼어요.
Q. 테크닉이 아니라 태도를 배워 오셨네요.
김: 그 캠프를 다녀와서는 음악이 주는 감정에 더 집중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원래라면 좀 더 기술적으로 접근했을 텐데, 기술적인 것도 좋지만 이제는 들었을 때의 감정을 더 우선하게 되더라고요.
Q. 저는 리버스 같은 기법을 배워 오셨을 줄 알았어요.
김: 그런 건 워낙 오래 해 왔으니 새로운 게 아니라서요. 그들의 태도가 제일 새로웠어요.
"스킵할 수 없다는 것"

Q. 베이징 FM3의 붓다머신도 있고, 절에서 파는 염불기도 있잖아요. 기기의 설계나 스피커, 재생 방식을 정하는 데는 어디까지 관여하셨나요?
김: 관여한 건 거의 색깔 정도예요. 은색으로 나오는 디자인 정도요. 저는 그 포인트만 봤어요. 스킵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Q. 뮤직비디오는 박찬경 작가님과 하셨어요. 회사 제안이었다고 들었는데, 작가님과는 어떻게 소통하셨나요?
김: 아직 직접 뵌 적은 없어요. 회사에서 박찬경 작가님과 같이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해 주셨어요. 찾아보니 영상이 너무 멋있고 작업들 중에 불교와 관련한 것들도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어요. 소통은 회사에서 해 주셨고, 완성한 26분짜리 음원을 통으로 보내 드렸더니 박찬경 작가님이 초안 영상을 보내 주셨어요.
그걸 보고 크게 터치할 게 없었어요. 그게 진짜 첫 초안인지, 회사에서 한 번 받고 다듬어진 초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처음 봤을 때는 거의 피드백할 게 없었어요.

Q. 커버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안 물어봤더라고요. 커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김: 커버는 저희가 제주도에서 송캠프를 할 때, 앨범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니 넷이서 자연스럽게 커버 이야기가 나왔어요. 종빈이도 그렇고 도훈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보니 다들 좀 할 줄 알거든요. 일러스트도 하고 포토샵도 하고요.
그래서 “커버나 해 볼까?” 하면서 서로 커버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잠깐 가졌는데, 그냥 놀면서 후보들이 쭈르륵 나왔어요. 그걸 회사에서 좋게 보셔서 그중 하나를 택하셨고, 그렇게 됐어요.
"킥에는 견인돼서 가는 느낌"

Q. [Dog] 때는 칸예가 가스펠을 샘플링하듯 불교 음악을 샘플링해 보려다 실패했다고 하셨어요. Pitchfork 리뷰는 “Me Life & Nothing Else”에 불교 챈트처럼 들리는 샘플이 있다고 썼는데, 맞나요?
김: 맞아요. 그런데 아직 성공은 못 한 것 같아요.
Q. 원하시는 단계가 따로 있군요.
김: 제가 원하는 칸예식 가스펠 샘플링은, 가스펠 자체가 그 곡의 진짜 메인 멜로디 수준의 샘플 역할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Me Life & Nothing Else”에서의 불교 챈트는 제가 느끼기에 노이즈나 앰비언스가 맡을 역할을 대신한 거라서, 메인 소스 역할은 못 하고 있어요. 아직은 좀 더 연구해야죠.
Q. [w18c] 때 프로듀싱이 일종의 명상으로 여겨졌다고 하셨어요. 그때 익힌 것 가운데 이번 앨범으로 넘어온 게 있을까요?
김: 이번 앨범에서 엄청 도드라지진 않았지만 계속 연구하는 건, 제 목소리를 어떻게 쓸 것이냐예요. 보편적으로 네 마디, 여덟 마디 이렇게 랩처럼 떡 놓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걸 실험해 봤던 게 [w18c]였어요.
[도그마]에도 “HDI”가 있긴 한데, 그건 워낙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계속 그 방면으로 연구하는 것 같아요.

Q. [LANGUAGE] 시절에는 한국어로 길게 서술하셨는데, 이번에는 문장이 짧고 반복이 곡의 몸통이 됐어요. 요즘은 가사를 어떻게 쓰시나요?
김: 최대한 일상에서, 억지스러운 걸 쓰지 않으려고 항상 해 왔어요. 요새는 석가의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나 자신과의 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해서 그런 내용들이에요. 저에 대해 발견한 점 같은 것들을 항상 쓰니까요.
그래서 과거에 비해 확실히 쓸 말이 없기도 하고, 내면을 항상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외부에서 무슨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가사 내용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Q. 가사의 반복도 수행의 일종이라고 봐도 될까요?
김: 그렇죠. 사실 명상이든 철학 공부든 저한테는 꽤 고통스러운 일이거든요. 즐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되게 힘들지만, 그래도 공부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그런 걸 음악적으로 쓸 수 있는 것 중에서는 반복이 제일 큰 것 같아요.

Q. 이번 기기도, 염불기도, 테크노도 끝없이 루프하잖아요. 본인에게 킥 드럼의 반복과 호흡을 세는 반복은 같은가요? 다르다면 어디서 갈라지나요?
김: 확실히 킥에는 견인돼서 가는 느낌이 있어요. 누군가가 박을 세 주고 있으니 그냥 거기에 따라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호흡을 알아차린다거나, 배의 움직임으로 셀 때도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 본인이 직접 컨트롤해야 하는 거다 보니 훨씬 노력해야 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피지컬 플레이어로 들을 때는 그 사이 어딘가의 경험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반복적일 때도 있지만 드럼이 아예 없을 때도 있는, 그런 부분들이요. 왜냐하면 음악을 소비하고 싶은 거지, 갑자기 명상을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아예 빡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살짝 그런 느낌이라는 거죠.

Q. 기기의 곡 순서를 되게 힘들게 짰다고 하셨는데, 명상 기기와 음악 사이의 접점을 맞추느라 그랬던 건가요?
김: 그렇죠. 명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트랜스라는 상태가 있잖아요. 거기로 가려면… 테크노가 괜히 반복적인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야만 분명히 음악이 나오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음악은 지워지고 나만 남는 경험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러려면 진짜 그 정도의 반복이 필요한데, 저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그걸 안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 사이를 좀 찾으려고 했어요.
Q. 앨범에 없는 기기 전용곡들은 처음부터 기기용으로 계획한 건가요?
김: 따지고 보면 플레이어에 들어간 26분이 앨범으로 쓰였을 수도 있었어요. ’플레이어를 할 거니까 이런 걸 만들자’보다는, 이런 것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건 플레이어로 푸는 게 좋겠다, 하고 된 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순서로 보면 음악이 조금 더 먼저였죠.

Q. 분노라는 칼을 칼집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연습을 한다고 하셨죠.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그 칼을 꺼낸 순간이 있었나요?
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도그마]에서 그나마 날카로운 말들은 대부분 옛날에 썼던 가사들이고, 최근에 쓴 것들은 쓰면서도 그런 감정들이 딱히 올라오지 않았어요. 그게 좀 통제가 잘 되는 것 같고, 많이 좋아졌어요.
Q. 기기 쪽 곡들에는 날카로운 가사가 꽤 보여요. 그 칼을 여기서 꺼낸 건가요?
김: 거기 있는 가사들도 과거에 썼던 거예요. 그리고 가끔은 칼이 빠질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때 억지로 다시 집어넣는 건 아니고, 뺐으면 뭐라도 썰자는 거예요. 다만 써는 대상이 달라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시기나 질투, 욕심 같은 걸 기반으로 대상을 골라서 휘둘렀다면, 지금은 그런 감정들에 과거만큼 크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썰 때도 정확히 왜, 무엇을 위해 썰 것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성이 있는 상태에서 칼을 휘두르는 거죠. 과거에는 이성을 잃고 막 했다면요.
"지금은 친구들이 말리더라고요"

Q. 9월 23일 제주 하우스 오브 레퓨즈에서 열린 료지 이케다 전시 개막 파티에서 오랜만에 XXX로 무대에 서셨어요. 두 분이 한 무대에 선 게 얼마 만이에요?
김: 적어도 6년 이상은 된 것 같은데, 굉장히 오래됐죠.
Q. 그날 무대가 어떻게 기억에 남았는지 궁금해요.
김: 되게 묘했어요. 갑자기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 같으면서도, 최근까지 혼자 무대를 많이 했으니까 ‘맞아, 이렇게 든든했었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한창 둘이 공연하러 다닐 때 보면 가끔 서로 하다가 싱크가 맞아서 같이 리듬을 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냥 되게 묘했어요. 되게 몽글몽글했습니다.
Q. FRNK 님이 [도그마]를 듣고 해 준 말이 있나요?
김: 엄청 잘 들었고, 제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가 보여서 되게 좋다고 얘기해 줬어요.
Q. 다른 인터뷰에서 ’진수 형 때문이 아니라 진짜 나 때문이었구나’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FRNK 님 없이 작업하면서 그걸 확인한 순간이 있었나요?
김: 그래도 결국은, 원래 우리가 너무 멀리 가고 있으면 진수 형이 말렸다면, 지금은 친구들이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생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혼자 이 모든 걸 다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 셌고 욕심도 엄청 컸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우리가 어디까지 행복하고 즐겁게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방향으로 더 욕심이 나는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은 모여서 즐기면서 만든 것에 가까워 보였어요.
김: 그게 엄청 중요했던 것 같아요. 진수 형이나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저는 음악을 만들 때 너무 즐기지 못하면서 한 것 같아서요. 휘두르고, 결과에 엄청 집착하고, 더 가야 하고, 더 잘나가야 하고, 거기에 너무 매여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유럽 캠프를 시작으로 작업하면서 그냥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주도 캠프도 그래서 그렇게 하게 된 거고, 실제로 엄청 즐거웠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Q. 한 방송에서 10년 전의 본인이라면 이 앨범을 두고 ’야마가 빠졌다, 껍데기뿐’이라고 했을 거라고 하셨죠. 그 친구에게 지금의 작업 방식을 보여 주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김: 이해를 못 하겠죠. 그리고 야마가 없는 앨범이라고 할 것도 결국은 사운드적인 부분보다는 내용적인 부분에 가깝고요. 전형적인 래퍼로서의 태도가 빠져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저라면 아마 ‘비트는 좋은데 이 랩은 내용이 그냥 왜 이래?’ 하지 않았을까요. 뭔가를 죽이려고 하는 게 크게 없으니까요.
Q. cjb95, ccr, Mount XLR. 세 사람이 이 앨범에 남긴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요?
김: 일단 ccr이 남긴 건 확실히 야마인 것 같아요. 내용적인 게 아니라 소리적인, 질감적인 야마요. ccr이라는 친구 자체가 그냥 야마 덩어리라서 그게 있는 것 같고요. cjb95는 그래도 힙합적인 걸 확실히 놓치지 않고 딱 잘 숨겨 놓았어요. 그리고 Mount XLR은 아무래도 제가 갈 새로운 방향에서, ‘우리가 여기서 출발한다’ 하는 걸 함께 제시해 주는 것 같아요.
Q. LP를 모으지만 LP로 듣지는 않는다고 하셨죠. 이 기기를 산 분이 5년 뒤에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다시 틀었을 때,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세요?
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경험인 것 같아요. 저도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뭘 하든 결국 나를 보는 거더라고요. 제가 음악을 만들어서 제 의도를 듣는 분들이 이해하시는지 못 하시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된 이유도, 결국 제가 예술을 소비할 때도 그 사람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가 이걸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한 그 해석이 내가 누군지를 말해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모든 게 내가 누군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보니….

Q. [도그마]는 기기, 뮤직비디오, 디지털로 나왔어요. 그때그때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들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뜻으로 봐도 될까요?
김: 일단 플레이어와 영상은 음악보다는 영상 그 자체, 플레이어 그 자체가 더 중요해요. 저한테는 영상을 보면서도 음악이 지워졌으면 좋겠어요. 보다 보면 그냥 나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플레이어도 조용히 혼자 틀어 놓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는 그게 명상과 되게 닮아 있고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지털 버전은, 열심히 활동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재미있고 괜찮은 걸로 풀었어요.
Q. 마지막으로, 이 앨범을 기기로 산 분들에게 건전지를 넣기 전에 알려 주고 싶은 게 있다면요.
김: 일단 건전지는 별도 구매라는 걸 알려 드려야 할 것 같고요.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냥 틀어 놓고, 틀어 놓은 그 자체에서 본인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제가 그 정확한 감정들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냥 틀어 놓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혼자 나와 마주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니 너무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가 안 된다고 화가 날 필요도 없고, 이해가 너무 된다고 거드럭거릴 필요도 없는, 그런 것 같아요.
글: 최승인(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