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드밀리야 고마워
올해 2026년, 한국 힙합 그냥 풍년이에요. 한국 힙합 밈 중에 “키드밀리야 고마워”라는 게 있거든요. 키드밀리가 앨범 내는 해면 꼭 좋은 앨범들이 쏟아진다는 거예요. 2021년에 창모 [언더그라운드 락스타], 쿤디판다, 최엘비 [독립음악], 화나까지 코로나 시즌 작업물이 한꺼번에 터졌고, 2023년엔 빈지노랑 이센스가 나오고 스카이민혁·오도마·랍온어비트까지 이어졌죠.

그런데 올해는 아예 키드밀리가 POV라는 레이블을 차려서, 작년이 KC의 해였다면 올해는 POV의 해라고 할 만큼 작품이 쏟아지고 있어요. 오늘은 그중에서 두 개를 들고 왔습니다.
두 앨범을 같이 가져온 데는 이유가 있어요. 알앤비/소울이 힙합하고 만나는 방식에 변천사가 있잖아요. 이 두 앨범이 그 두 개의 다른 벡터예요. [PURITY]는 얼터너티브 알앤비 계보에서 내려온 알앤비고, [SOUL BABY]는 힙합 프로덕션의 렌즈로 본 알앤비예요. 같은 뿌리인데 들어가는 문이 달라요. 게다가 두 팀 — 매튜가 속했던 아크하입, 라프 산두가 있는 오카시 — 이 서로 교차점이 있는, 우리가 알 만한 크루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그 ’음악 공동체’인 거죠. 이 얘기는 뒤에서 계속 나올 거예요.

[PURITY]부터 볼게요. 얼터너티브 알앤비도 이제 역사가 꽤 됐잖아요. 근데 아직도 프랭크 오션, 다니엘 시저만 얘기하는 건 좀 나이브하다고 봐요. 그 뒤로 오드 퓨처에서 브록햄튼으로 번져간 계열이 있고, 이 앨범은 딱 그쪽이에요. 프랭크 오션, 맷 챔피언, 케빈 앱스트랙이 하던 것에 가깝게 느껴져요.

작년에 저스틴 비버가 디종이랑 Mk.gee 같은 음악가들을 데려다가 [SWAG]으로 증명했잖아요? 그 해체적인 무드에 팝이나 알앤비의 멋쟁이 감각을 얹은 느낌이에요. 프로덕션이 서정적이고 무드로 끌고 가는데, 큰 악기 하나를 이그러뜨려서 내는 게 아니라 은근하게 좋아요.
이 앨범이 진짜 좋은 건 이야기예요. 순수를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거든요. “소년은 죽었다”로 시작해서, 순수한 시절은 끝났지만 잊지는 말자며 방황하다가, 알고 보니 그 순수가 몸속에 있었고, 그걸 다시 찾겠다 기도하다 “이게 나 맞나?” 물으며 끝나요. 근데 이걸 부르는 웬즈데이 보컬이 캐릭터랑 찰떡이에요. 스트릿하고 반항적인데 알고 보면 여리고 순수한, 소년미 있는 감정선이요.
그 거친 입에서 서정적인 진심이 나오니까 영화처럼 그려져요. 영어 가사라 안 와닿을 수 있는데 해석을 친절하게 다 달아놨으니 따라가는 재미가 있고, 중후반부에 “음…?” 싶은 구간도 ’클라우드 나인’에서 다 해소되는 앨범적 장치가 재밌어요. 그리고 ‘타월’, 이건 미노이·윤다혜 목소리를 리듬이나 무드로 정말 잘 썼어요. 아프로비츠로 봐도 얼터로 봐도 되는데, 그냥 멋진 트랙이니 필청입니다.

[SOUL BABY]는 반대예요. 힙합 프로듀서들이 알앤비/소울을 해석하는 방식이죠. 이게 계보가 있어요. 르자나 칸예가 90·00년대 소울을 피치업해서 칩멍크 소울을 만들었고, 그게 트랩 위에선 트랩 소울, 더 빠르고 왜곡되면 저크, 오피움·카티 쪽으로 가면 레이지가 되잖아요.
이 앨범은 그런 것들을 총망라한 느낌이에요. 그리젤다의 드럼리스나 케이트라나다 같은 새로운 그루브하고는 또 다른 결의 음악들을 모아놓은 거죠. 실제로 라프 산두가 어릴 땐 소울을 듣고 지금은 레이지에 있는, 자기 취향을 그대로 담은 앨범이라고 하더라고요.

라프 산두라는 사람 커리어가 또 재밌어요. 아버지 사업 때문에 어릴 적부터 캐나다랑 일본, 특히 일본에 오래 살아서 일본어를 잘해요. 서드 컬처 키드인 거죠. 여러 문화권이 섞여 있고, 그 혼재함을 자기 커리어에 그대로 녹여요. 쇼미 12에선 주로 랩을 보여줬지만, ’MOHO’는 알앤비/소울에 가까웠고 싱잉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모습도 있었죠. [SOUL BABY]도 레이지·저크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알앤비/소울의 중간 지점에 아스라이 자리 잡아요.
첫 곡부터 힌트를 줘요. 본인한테 의미 있는 글렌 체크 ’Vivid’를 샘플링하고, 다음 곡은 다혜 씨 소울풀한 목소리로 감고, 그다음 로맨스는 소울 곡 피치업, 칩멍크 소울인데 리듬은 저크로 정신없이 가고요. 가사엔 브라이슨 틸러 ‘Don’t’, SZA ’Snooze’를 녹여내고, 토크박스인지 튠인지 헷갈리는 소리가 뒤로 이어지는 것도 재밌어요.
솔직히 아쉬운 건, 완전 빵 때리는 곡이 없어요. 딱 울리는 띵한 한 방이 없죠. 근데 저는 이걸 이렇게 봐요, 이건 완성된 앨범이 아니라 가능성의 앨범이에요. 서드 컬처 키드로서 라프 산두라는 사람 자체가 여러 문화가 겹친 과도기적 정체성이잖아요. 그러니 이 앨범은 그 사람의 초상으로는 오히려 완결적이에요. 소포모어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이 사람 이렇게도 갈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이 혼재된 게 저는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 두 앨범을 다 만든 매튜, 저는 올해의 프로듀서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스펙트럼이 넓고, 자가복제도 잘 피해가요. 근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예요. 이 앨범들에 리피자라는 이름을 쓰는 이민혁, 양치기소년단 키보디스트가 참여했거든요. 저는 이런 게 좋아요. 연주자랑 DJ·프로듀서가 뭉쳐서 새 사운드를 만들고, 그게 하나의 움직임이 되는 거요.
멀리 보면 소울쇼크 앤 칼린이 있고, 가까이 보면 디너 파티 — 로버트 글래스퍼, 나인스 원더, 테라스 마틴, 카마시 워싱턴 넷이죠. 그리고 배드배드낫굿, 테이크어 데이트립까지. 이게 다 영국 재즈 댄스 씬, 동아기획, 하나뮤직, 소울쿼리언스 같은 음악 공동체 문화랑 연결돼요. 그리고 지금 우리 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리듬소망사랑의 신드럼, 하은,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준세컨드라이프, 베이스 치는 형(Hyung), 미드나잇 조깅 클럽, 박재범 밴드 마스터, 이찬진, 데카당, 한로로 건반 치면서 프로듀싱하는 스티븐 등등까지.
이런 사람들이 뭉쳐서 좋은 앨범을 같이 만드는 것. 결국 좋은 음악은 계보를 잇는 느슨한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두 앨범을 같이 묶어서 추천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