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각종 영양소를 태워 움직이는 기계라는 관점에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들은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비교적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몸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가진 것들을 “맛있다”고 느낀 개체는 조금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려고 노력했을테니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섭취하려 노력한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더 많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맛있는 것들을 더 많이 소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해당 관점으로 요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는 통상적으로 날고기 보다는 구운 고기를 더 맛있다고 느낀다. 고기를 구우면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고, 이건 소화 효율을 올리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니까 요리는 어떤 관점에서 소화 과정을 외부에 아웃소싱 하는 것이다. 소화 효율이 올라가면 같은 양을 먹어도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 테니 기계가 굴러가는 효율의 관점에서는 이득일 테니 우리는 되도록 요리를 하게 끔 진화했을 것이다.

요리를 할 때 우리는 껍질을 까고, 뼈를 제거하고, 원물을 정제하고, 발효 시키는 등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을 마주한다. 쉽게 말하면 맛있는 부분만 남기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이제 인간을 보자. 멀티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한참 유행했던 시기가 있다. 쉽게 말하면 모두가 가면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직장, 친구, 가족 등 여러 관계에서 각각 영역에서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 드러내고 사니까. 물론 그 모든 것은 본인의 일부이기도 하다. 마치 양파가 껍질을 벗겨내어도 양파인 것처럼.

인간 또한 식재료처럼 그 모든 것을 걷어냈을 때 나오는 알맹이가 존재한다. 스스로를 손질해서 껍질 속의 나를 마주하려는 욕망도 존재한다. 온전한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든지 하는 경험담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예술가들은 종종 덕지덕지 붙은 치장들을 몽땅 제거한 자신의 알멩이를 그대로 꺼내 전시하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할 담예의 [가장 얇은 가죽]처럼.

담예의 [가장 얇은 가죽]의 앨범커버는 얼굴에 들러붙은 얇은 피막을 뜯어내려 시도하는 사람을 전시했다. 얼굴이라는 단어를 부숴보면 이게 참 재미있게 다가온다. 글자를 “얼”과 “굴”로 부수었을 때 “얼”은 사전적으로 “정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을 갖는다. 여기에 구멍을 뜻하는 “굴”을 붙였다. 그럼 얼이라는 단어는 정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들어있는 굴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굴 속에 들어있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누군가 굴 속으로 들어가 안에서 본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둘째는 굴 주변의 땅을 전부 파버려서 굴의 깊이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뜯”이라는 1번 트랙이 드러내는 바는 명확하다. 앨범 커버에서부터 “얼굴”에 붙은 피막을 스스로 뜯어내는 행위를 전시하고, 시작부에는 뜯어낸 상태 자체를 보여준다. 이 앨범은 담예라는 재료를 손질해서 가장 맛있는 부위만 남기는 행위다.

앨범은 “archie’s Interlude”를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자기 자신과 주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후반부에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스스로를 전시하는 앨범에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러닝타임의 절반 가량을 할애하는 점은 인상깊다. 오롯이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전시하는 앨범에 친구들을 한가득 채운 크레딧은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다.

우리는 굳은살처럼 박힌 페르소나를 수 십 겹씩 두르고 살아간다. 담예의 [가장 얇은 가죽]같은 앨범이 귀에 들어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단단히 중무장한 시대에 갑갑하다며 거죽을 찢어버리고, 손질한 자기 자신을 양념도 치지 않은 채로 전시하는 앨범이니까. “반골기질친구들”을 둔 사람 다운 행보다.

그리고 인간세계에서 이런 스토리텔링은 언제나 대리만족을 선사하곤 했다. 혹시 살아가는 게 묘하게 갑갑한 느낌이 든다면, 담예의 [가장 얇은 가죽]이 당신에게 묘한 해방감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