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로후(이하 ‘제’): 안녕하세요 저는 드럼 치고 프로듀싱 하는 제로후(ZEROWHO)입니다.

Q. 드럼과 프로듀싱, 둘 중에 어떤 걸 먼저 시작하셨나요?

제: 드럼을 먼저 쳤어요. 대학 전공도 드럼이고요. 프로듀싱은 지금도 배우는 중이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그러면 제로후 님을 음악의 세계에 끌어들인 아티스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아티스트 때문에 드러머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아티스트가 있는데, 저는 없어요. 사실 저는 어머니 덕분에 드럼을 치게 됐거든요.

저는 교회를 다니는데요. 제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교회에 드럼 칠 사람이 없다면서 드럼을 쳐보라고 하셨어요. 당시에 저는 치기 싫었죠. 당시에 저는 좀 산만한 아이였는데요. 드럼은 너무 어렵고 답답했거든요. 그런데 중학생 때쯤 다시 드럼이 재미있어졌어요. 그러다가 드럼을 전공하게 된 거죠.

Q. 교회 드러머로 시작했다가 전공까지 가게 되신 거군요. 그럼 어떤 드러머가 되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해요. 드럼에 흥미를 느껴서 전공을 결정한 뒤, 내가 어떤 드럼을 치고 싶다고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한 게 있을 것 같거든요.

제: 처음에는 CCM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교회에서 드럼을 계속 치자는 마음으로요. 당시에 저는 CCM 팀들밖에 몰랐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AC/DC 같은 밴드를 하나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을 전공하려고 결정한 뒤에 학원을 다녔는데요. 그 학원에서 입시하던 형들이 흑인음악에 드럼치는 영상을 자주 봤는데요. 그게 저한테 되게 센세이셔널했거든요. Robert Glasper가 피아노를 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지금이야 피아노 보이싱 같은 부분이 어떻고 하면서 듣지만 당시에는 그게 마냥 듣기 좋았어요.

Q. ears mag에서 진행했던 RSS 라디오 인터뷰를 보면, Robert Glasper나 Questlove, Clyde Stubblefield 같은 연주자들이 언급되는데요. 이런 분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제: 쉽게 설명하면 춤을 추게 만드는 드러머를 좋아해요. Chris Dave, Clyde Stubblefield, Questlove처럼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끔 드럼을 치는 사람이 있거든요.

Q. 이후 인고의 시간을 거쳐 호원대 실용음악과에 들어가셨잖아요? 그때 수업 받으면서 드럼 연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요?

제: 수업 받으면서 많이 달라지죠. 그런데 이걸 교수님들이 가르쳐준 대로 해서 달라지는 느낌은 아니에요. 교수님들은 정답을 가르쳐주시지 않거든요. 가령 한상원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스네어를 좀 더 동물처럼 치라거나, 하이햇을 더 차갑게 치라는 식으로 알려주시거든요. 정원영 교수님은 좀 더 따뜻하게 치라고 하시거나, 시끄럽지 않게 치라고 하시고요. 남들을 위해서 공간을 열어보라는 피드백도 있었고요.

최원혁 교수님이 했던 말씀도 되게 기억에 남아요. 제가 요즘 곱씹는 말인데요. 신입생 공연을 준비하는 저희를 앉혀놓고 저희한테 “너는 음악을 뭐로 제일 먼저 듣는 거야?”라고 물으셨어요. 저희는 당연히 귀라고 답했죠. 그런데 교수님이 “아니다, 음악은 피부로 듣는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요즘 들어 공감되는 순간들이 생겼어요. 덕분에 저도 연주할 때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제로후 님의 색깔이 거기에 묻어나기도 하겠네요.

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저는 같이 연주하는 사람과 관객에게 제 연주가 어떻게 들릴지 많이 고민해요. 좋은 소리를 제공해야하는 사람이니까 그걸 계속 점검하는거죠. 대부분 입시를 준비하고 나면 포커스가 자신한테 있는데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합주를 많이 해봤고, 공연도 많이 해봤어요. 덕분에 듣는 귀가 많이 열렸고, 그런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Q. 그럼 스스로 친 드럼을 촬영해서 어떤 식으로 소리가 나는지 점검도 자주 하시겠어요.

제: 어렸을 때는 정말 하기 싫었던 연습이었죠. 발가벗겨지는 기분이거든요. 인스타그램에 라는 이름으로 릴스를 올리는 것도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어요. 일부러 뒤에 음악을 깔지 않고 드럼소리만 찍어서 올리는 데요. 그런 영상을 올리면 어쨌든 마음에 드는 부분이 나올 때까지 연습을 하게 되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제 드럼을 들은 사람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연주를 잘 했는지를 판단하는데요. 처럼 영상을 찍어서 스스로 확인하고, 교수님이나 함께 연주하는 친구들의 피드백을 거치면서 제 소리를 마주할 용기를 얻었어요.

Q. 관점이 점점 넓어지는 부분이 보이네요. 그럼 제로후 님은 드럼이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흐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럼은 리듬 악기고, 사람들이 ‘리듬을 잘 쳐야한다.’ 혹은 ‘리듬이 좋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구글에 리듬의 어원을 찾아봤어요. 리듬은 그리스어로 린(rhein)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요. 흐름이라는 뜻이래요. 그럼 리듬도 일종의 흐름이 되는 거죠.

연주자들도 각자마다의 개성이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음악을 플랫하게 쭉 끌고 가는 걸 좋아하고, 다이나믹이 좋은 사람도 있죠. 저는 드럼이 그런 것들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럼이 흐름을 단단히 잡으면, 다른 악기들이 그 위에서 노는 거죠.

Q. 현재까지 음악적으로 교류하는 호원대 출신 친구나 선후배들도 궁금해요.

제: 이번 앨범을 같이 한 친구들부터 먼저 말씀을 드릴게요. 1번 트랙부터 보자면 수요, 베이스 치는 누기, 퍼커션 치는 상준이 형이 있죠. 2번 트랙의 가말, 건반치는 찬혁이, 베이스 치는 수빈이 형도 같은 학교 출신이죠. 3번에는 기타 치는 상준이 형이 있죠. 개인적으로 친한 형님들이 정말 많지만 가장 가까운 건 소울딜리버리, 브로스톤, 드럼 치는 주석이 형 정도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Q.  앨범에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도 지금 언급이 됐잖아요? 이 분들은 학교 통해서 만나게 되신 거예요?

제: 아닙니다. 21~22살 쯤부터 여기저기서 활동하며 보게됐어요.

Q. 호원대 관련해서 여쭤본 이유가 제로후 유니버스 때문인데요. 멤버가 호원대 출신 중심으로 꾸려져 있잖아요? 어떤 분들이 속한 곳인지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제로후 유니버스는 저의 음악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팀이에요. 건반의 찬혁이, 베이스에 수빈이 형, 기타의 유빈이, 그리고 저까지 4명을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유빈이를 제외하면 전부 호원대 출신이죠. 상황이 맞으면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게스트로 불러서 연주를 하고 있어요.

Q. 기존에도 파티를 종종 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제로후 유니버스도 파티에서 함께 놀다가 만들게 되신건지 궁금해요.

제: 제로후 유니버스는 21년도부터 했어요.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클럽 연주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제로후 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죠. 제로후 밴드는 멤버가 정해져있는 본격적인 밴드는 아니었고요. 클럽에서 연주하기 위해 꾸려진 팀 같은 거였어요. 당시 매주 클럽에서 연주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다양한 친구들이랑 클럽에서 공연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했던 연주는 정말 용감한 연주였네요. (웃음)

지금 제로후 유니버스의 멤버들은 작년에 [It happens]를 같이 작업한 친구들이 대부분인데요. [WYK?]를 준비하면서 제로후 유니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된 거예요. 요즘은 수빈이 형, 찬혁이, 유빈이랑 함께 좀 더 댄스 뮤직 기반의 라이브 편곡을 다시 하고 있어요. 80년대 신디사이저나 샘플러도 많이 들어보고, 들여와서 재미있는 라이브를 그려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8090 사운드라고 하니 조금 궁금한데요. 어떤 음악들을 준비하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제: 사실 저희 또래는 그 세대를 못 겪어봤잖아요. 하이라이트로만 볼 수 있던 시대니까요. 그런 것들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2000년대 생들이 만든 음악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과거를 요즘 식으로 재해석해서 풀어내는 밴드라고 하면 좋겠네요. 제로후 유니버스는 제로후 님의 음악적 세계관을 밖에 퍼뜨리기 위한 거라고 소개주셨잖아요? 그럼 일종의 프로듀서라고 생각되는데요. 어떤 계기를 통해 프로듀서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제: 저는 프로듀서가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프로듀서는 되게 인간적인 요소가 강한 역할인 거죠. 어떤 사람인지 체크해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로후 밴드때 부터 계속 프로듀싱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로서는 [It happens]때 가장 많이 배웠고, 시작했다고 볼 수 있죠.

Q. 퀘스트러브 같은 연주자 출신 프로듀서 외에도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있을까요?

제: 저는 Inflo라는 영국 프로듀서를 진짜 좋아합니다. SAULT, Cleo Sol, Little Simz랑도 했었고, Michael Kiwanuka 앨범도 했었죠. 그냥 요즘 영국에서 핫한 R&B를 다 만드는 프로듀서예요. 저는 드러머다보니까 드럼이 가장 먼저 들리는데요. Inflo는 아날로그하고 빈티지한 루프를 계속 돌리거든요. 그리고 리듬이 재밌어요. 루프에 설치된 Inflo 특유의 장치가 앨범을 듣는 내내 몸을 흔들게 만들거든요. 요즘 가장 꽂혀있는 프로듀서예요.

Q. 좋습니다. 요즘 프로듀서로서 구현하고 싶으신 음악이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제: [WKY?]에서도 구현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인데요. 생각이 나서 돌리는 게 아니라 계속 돌릴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고싶어요. 저는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들을 때 대부분 앨범 하나를 계속 반복해서 듣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알고리즘 속으로 들어가버리더라고요. 제가 Inflo 앨범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앨범이 끝나도 끝난 지 몰라요. 뫼비우스의 띠처럼요.

SAULT도 앨범을 낼 때 밴드 캠프에 40분짜리 풀 앨범을 먼저 내고, 그걸 잘라서 여러번에 걸쳐 스트리밍 사이트에 오픈하거든요. 그런 다른 뮤지션들의 모습들까지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했을 때, Inflo는 사람들이 앨범을 통으로 듣게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WYK?]를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다음 앨범부터는 앨범 하나를 한 곡이라고 생각하고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 매니아들이 말하는 앨범의 유기성에 대한 담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재미있는 관점입니다. 평소에 음악 작업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잼으로 먼저 시작하시나요? 아니면 레퍼런스를 잡고 그런 종류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시나요?

제: 일단 저는 레퍼런스를 잡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음악을 만들다가 다른 음악이 떠올라서 그 음악을 역으로 듣게되는 경우가 있죠.

혼자 작업할 때는 잼으로 하기는 힘드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일이 찍죠. 하지만 잼을 사용할 수 있으면 무조건 써먹죠. 예를 들어 작년에 발매한 [It happens]를 라이브틱하게 다시 편곡하고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잼을 해요.

Q. 역으로 레퍼런스가 떠오른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게다가 드러머시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제가 접해온 다른 프로듀서 분들이랑 다른 강점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자신의 강점같으신가요?

제: 저는 리듬을 맛있게 찍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곡을 쓸 때 주로 베이스 리프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입으로 흥얼거린 베이스 리프를 음성메모에 녹음했다가 작업실에서 찍는거죠. 그걸 들으면 생각나는 리듬이 생겨요. 이런 식으로 리듬을 먼저 잡고 곡을 쓰니까 그게 제 색깔을 만드는 것 같아요.

Q. 오디오 소스를 스플라이스에서 가져오시기도 하나요?

제: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샘플이 성에 안 차는 경우가 많아요. Clyde Stubblefield나 Questlove 같은 드러머의 루프를 자꾸 듣다가 스플라이스로 돌아오니까 뭔가 원하는 맛이 안 나오더라고요.

Q.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시퀀싱을 병행하시는 것 같아요. 입으로 흥얼거린 걸 찍는다는 점에서는 즉흥적인 요소도 들어있는 것 같고요. 두 방식이 혼재되면서 나오는 시너지가 있을까요?

제: 잼으로 만든 음악을 녹음하는 과정을 볼 때, 라이브 느낌을 보존하고 싶어서 후작업을 최소화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어요. 예를 들면 스튜디오에서 악기들을 녹음한 뒤에 다른 오디오 소스를 레이어링하는 작업은 거의 없는 편이죠. 그런데 저는 즉흥적으로 만든 소리에 다른 오디오 소스를 덧대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WYK?]를 만들 때를 예로 들면, 곡을 쓰려고 속초를 한 번 갔었어요. 속초에서 스케치를 해놓고, 작업실에 돌아오면 스케치에 맞춰 직접 연주한 걸 녹음하는 식이죠. 그런데 “Elephant”를 작업하다가 킥 소리에서 뭔가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럴 때 미디로 서브킥을 하나 블렌딩해서 쓰는 거죠. 하지만 실제 악기 특유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줄을 타야하니까 많이 쓰지는 않아요.

뭐가 더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미디기반 프로듀서분들과 다른 점은 확실히 있죠. 컴퓨터를 기반으로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좋은 소스를 찾는 게 오래걸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소리를 튜닝하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을 쓰는 거예요. 원하는 소리를 내줄 수 있는 악기를 직접 수배하고, 제가 원하는 소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튜닝하는 작업들에 더 많이 투자하죠. 그래서 트랙별로 다른 드럼을 쓰고, 마이킹도 전부 달라요.

Q. 리듬측면에서 훨씬 다양한 접근이 가능해지겠네요. 미디로 찍으면 아무래도 칼박에 딱딱 들어가는데, 시간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니까요. 0.0001초 차이가 또 다른 그루브를 만들어내잖아요.

제: 사람들이 GOAT라고 하는 마이클 잭슨이나 스티비 원더 같은 아티스트도 스템을 까보면, 미디로 찍은 칼 같은 박자가 안나와요. 메트로놈에 딱 맞는 연주보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주는 게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박튠 같은 걸 잘 안해요. 디렉할 때도 좀 틀리면 어때 하면서 쭉 가죠.

Q. 좋습니다. 아까 잠깐 언급된 EP [I t happens]도 잠깐 얘기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제: [It happens]는 ‘그럴 수 있어’라는 뜻이에요. 제 MBTI가 T라서 그런지 잘 공감을 못하는데요. 잘 공감되지 않는 말을 들을 때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쓰는 표현이에요. 입버릇이기도 하고요. 저는 음악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던 사람이고, 음악이 늘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을 해줬던 것 같아요.

뮤지션이 아닌 사람이 음악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낭만적이어 보일 수 있고, 뭔가 풍류에 취해서 바람 따라 물 따라 산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음악을 하는 삶은 그렇게 낭만적인 게 아닌 것 같아요. 실제 많은 뮤지션들은 자신의 공간 안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거든요. 아마 저 외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코스가 있잖아요. 초중고 나와서 대학 가고, 남자는 군대 갔다가 취직하고 그런 식으로요. 실음과 준비하는 어린 학생들도 뮤지션에게 그런 코스가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좋은 대학에 간다고 음악을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반대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이 음악을 잘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음악에서 대학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필수는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입시를 오래 준비하면서 직접 느끼기도 했고, 제 드럼 선생님이었던 신드럼 형도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대학을 간다고 인생이 바뀌지도 않고, 가서 제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4수째 입학시험을 볼 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한다는 마인드로 쳤어요. 보통 입시도 어떤 음악을 연주해야 붙는다는 트렌드가 있는데요. 마지막 입시때는 송폼만 정해두고 거의 잼하듯이 쳤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만 해서 입시가 오래 걸린 것 같기는 해요. (웃음)

Q. 진짜 치고 싶은 대로 치셨군요.

제: 원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입시곡을 짜주시는데요. 그때 제가 배우던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 “너 하고 싶은 거 해. 네가 좋은 거 해야지. 네 곡인데.”라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선생님이 짜준대로 치면 연주적인 능력치나 기술적으로는 잘 보여줄 수 있겠죠. 그런데 당시에 선생님과 저는 그건 온전한 저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보는 시험이고, 나 자신을 보여주는 거라면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하는 거예요. 제가 “아웃트로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더니 “몰라. 그냥 교수 님이 끝내라고 하면 끝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끝내라고 할 때까지 친 적도 많아요.

마지막에 호원대 시험 볼 때는 화가 난 상태로 시험을 봤어요. 시험장에서 면접을 보는데, 저를 안 보고 계속 식사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나는 이게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를 안 보고 저렇게 밥만 먹네. 오늘 저 사람이 나 보게 만든다.”라고 생각했죠. 덕분에 긴장이 분노로 변하면서 더 자신있게 쳤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더 셌던 것 같아요. 너희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간다는 스탠스였죠. 음악은 그 때마다 저한테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해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23년도에 신드럼, 홀리그레일, 제로후 유니버스 라인업으로 공연을 했었는데요. 그때 느낀 도파민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또 하고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이걸 하려면 내 음악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다음 날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앨범 만들자고 던졌죠. 그게 [It happens]예요.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앨범 제목도 뭣도 없었죠. (웃음)

Q. 개인적으로 [It happens]에 대한 첫인상은 “청춘 드라마 같다.”는 거였어요. 불안하지만 일단 앞으로 내달리는 청춘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앨범 시작부터가 약간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제: 불안하지만 앞으로 간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완전 맨땅에 헤딩이었거든요. 당시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곡은 써야겠는데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친구들한테 다 부탁했어요.

1번 트랙 “WELCOME”은 실용음악 학원에서 만난 유빈이라는 친구랑 같이 쓴 곡이에요. 기타 치는 친구인데 같은 작업실을 오래 썼어요. 유빈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미친 놈이에요. 유빈이가 우리나라 기타리스트 중에 홍준호 선생님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그 분이 참여하신 곡이 나오면 그날 바로 멜론에 들어가서 바로 카피해서 쳐볼 정도였어요.

당시 저는 옛날 소울음악이나 펑크(Funk) 음악에 미쳐있었는데요. 그 시기에 유빈이한테 가서 흑인음악 기타리스트들을 들려주면 걔는 거기 전혀 관심이 없어하는 그런 사이였죠. 그래도 둘이 있으면 재미있고, 음악 얘기나 사는 얘기들 많이 하면서 되게 친하게 지냈어요.

제가 4수 끝에 학교를 갔을 때, 유빈이는 군대에 갔어요. 무슨 자신감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빈이한테 군대 다녀오면 네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놓겠다고 얘기했죠. 마침 유빈이가 전역했을 때 제가 앨범을 낼 시기였는데요. 그때 유빈이가 아날로그에 빠져서 앰프 없이는 연주를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듣던 음악에 관심이 생겼고요. 그렇게 함께 만든 곡이 “WELCOME”이죠.

제가 입으로 멜로디를 부르면 유빈이가 여러 코드를 입혀줬는데요. A파트까지는 그렇게 됐지만, B파트가 없었어요. 그런데 유빈이가 군대에서 써놓은 멜로디가 있다면서 그걸 B파트에 입히면서 완성됐죠.

Q. 다른 트랙도 얽힌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제: 2번 트랙은 사운드체크하다가 만든 트랙이고요. “Game Of Choice (with TIVE, Graffitifilm)”는 진관이(TIVE)랑 만들었죠. 둘다 친구가 많지 않아서 자주 얘기하다가 친해졌는데요. 베이스 치면서 놀다가 리프 하나를 만들고, 그걸 디벨롭해서 만들었어요. 그래피티 필름이라는 프로듀서 친구도 “Game Of Choice (with TIVE, Graffitifilm)”에 도움을 많이 줬는데요. 그 친구가 B 파트랑 곡의 전체적인 질감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줬어요.

“Chill ROAD”는 잼하다가 만들었는데요. 합주를 모니터링하다가 공연장에서 바로 만들어버린 곡이에요. “WHAT WE LOVE (with Suyo)”는 작업중에 쉬다가 우연히 우리가 좋아하는 걸 다 얘기하는 시간이 생겼는데요. 가사를 보면 “솔직이가 좋아”라는 대목이 있는데, 베이스 치는 혜성이 형이 키우는 도마뱀 이름이에요. 작업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줬죠. 그때 대화하면서 나왔던 걸 그냥 가사에 전부 집어넣었죠.

“Cherry Talk (with Suyo)”은 제 작업실에서 잼하다가 만든 곡이에요. 찬혁이가 조금 늦는다면서 미안하다고 연남동 체리트럭에서 체리를 사왔어요. 그걸 먹으면서 술 한 잔 하면서 같이 수다를 떨었거든요. 그때 약간 되게 깻잎 논쟁 같은 주제로 얘기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서로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도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죠. 그러다가 “술도 좀 마셨으니 잼이나 할까?” 하고 만들어진 거예요.

그 곡 녹음하던 날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It happens] 녹음을 RSS 하우스 녹음실에서 3일동안 숙식하며 진행했는데요. 그 날이 마지막 밤이었거든요? 불을 다 끄고 잼을 하는데… 약간 캠프파이어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Q. 약간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나요?

제: 저는 울었어요. 저는 그 때의 감정을… 또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투박함… 처음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처음하는 사람들만 낼 수 있는 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그때 “Cherry Talk (with Suyo)”을 녹음하면서 느꼈어요. 음악이 엄청 신비로운 거구나. 음악을 피부로 들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처음 실감되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저는 이 곡을 가장 좋아해요. RSS 하우스에서 녹음하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봤고 너무 꿈 같은 시간들이었죠. 매일 녹음할 수 있고, 자다 일어나서 녹음할 수 있는 환경이 사실 많지 않으니까요.

Q. [It happens]를 통해서는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제: 처음에는 제가 앨범을 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It happens]를 만들게 된 거였는데요. 막상 작업을 해보니까 너무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자존심을 내려놨죠. 친구들한테 “나 못하겠으니까 도와줘. 너희가 필요해.”라고 얘기하고, 도움을 받았어요. 친구들도 아마 그런 것들을 배웠을 거예요. 뮤지션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고함이 있잖아요.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순간에 어떤 것들은 포기해야하죠.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이는 게 말로는 쉽지만 실질적으로 서로 교감하고, 각자의 것을 합치는 과정은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요. [It happens]를 만들면서 저희는 서로 포기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고, 그 과정에서 저도 ‘그럴 수 있지.’라는 문장으로 끝내는 법을 배웠어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해도 그럴 수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지 못해도 그럴 수 있어. 그러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법을 배웠어요. 동시에 내가 내고 싶은 소리가 어떤 것인지 전달하는 방법,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방법,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그때서야 조금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그 사람들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지 같은 거요. 그래서 저한테는 많은 공부가 되었고, 이제야 좀 음악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앨범이에요.

Q. 좋습니다. 그 뒤로 1년만에 [WYK?]가 발매됐죠. 제목이 무슨 뜻인지가 가장 궁금했는데요. 어떤 뜻인가요?

제: ‘What’s Your Key?’라는 뜻이에요. 너의 열쇠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거죠. 저에게 하는 말이자 듣는 분들께 하는 질문입니다.

Q. ‘key’라는 걸 어떤 감각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제: 살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운 감정들을 해결하는 열쇠예요. 방법보다는 삶의 태도에 더 가깝죠.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 그 상황에 놓인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마주했던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열쇠에 대한 이야기죠. 이렇게 하면 해결된다의 차원이 아니에요. 같은 문제에서 저번에 이렇게 바라봤다면, 이렇게도 생각해보라며 하나씩 던져주는 거죠.

Q. 앨범 커버가 어안 렌즈로 스테인드 글라스를 찍은 것처럼 표현돼 있잖아요. 커버는 누가 제작하셨나요?

제: 호준 씨라고 이제 가말(GAMAAL)의 앨범 커버를 만든 분인데요. 종빈(가말)이의 친구입니다. 디자인을 하시는데요. 이런 아트워크를 주로 하시는 분은 아니세요. 지인찬스로 하게 된 거죠.

Q. 이런 앨범 커버를 표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 앨범을 만들 때부터 앨범 커버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곳들은 보통 교회나 성당 같은 곳이잖아요? 제가 이 앨범을 통해 받았던 감정이 사랑인데요. 그 사랑이 이성간의 사랑은 아니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전한 사랑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 봤을 때, 교회나 성당 같은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테인드 글라스는 약간 빈티지한 양식이잖아요. 제 음악도 그런 사운드를 추구하니까 거기 꽂혀있었죠. 어안렌즈 같은 경우에는 가말의 앨범 커버에서 떠올렸어요. 가말도 그런 표현을 썼거든요. 그 그림 위에 ‘너의 키는 무엇이냐?’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형식인 거죠.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 [WYK?]는 앨범의 흐름이 중요한 앨범이 아니에요. 각 트랙이 말하는 메시지가 저에게 너무 중요한 것들이고, 그것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거죠. 그럼 싱글로도 낼 수 있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 메시지들이 모였을 때 보여주는 윤곽이 있거든요. 그게 스테인드 글라스 이야기하면서 나온 ‘사랑’이라는 키워드고요.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하자는 거예요. 그걸 위해 필요한 것들을 트랙별로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의도한 거고요. 그래서 ‘Look Around’고, ‘Open UP!’이고, ‘Visiting me’이며, ‘Elephant’죠. 쉽게 말하면 사랑하자는 건데, 지금 이 사회에서 사랑이 너무 하나의 일면만 비추는 것 같아요. 물론 로맨틱한 사랑도 필요하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 물론 저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경구죠.

Q. 저도 그렇습니다. (웃음)

제: 그리고 앨범을 만들면서 다큐를 찍었어요. 지금 편집중인데요. 제가 받은 사랑을 쫓아가는 내용이에요. 제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셨던 분이 할머니거든요? 그걸 담기 위해 할머니의 산소에 가는 모습을 담는 식이죠.

앨범과 다큐를 제작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제가 주변에 충분히 많은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앨범과 다큐 제작을 마치고 나니까 제 생각만큼 그렇지 못했더라고요. 그렇기에 내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앨범이 끝났어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저를 향한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Q. 전작과 무드가 상반된다는 생각도 했어요. [It happens]가 청춘드라마 같았다면, [WYK?]는 청춘드라마 마지막회에 “5년 뒤”라는 텍스트가 뜨고 성숙해진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는 장면이 그려졌거든요. 이런 분위기의 변화를 꾀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 이번 앨범은 어떤 말을 해야겠다는 메시지가 명확했어요. 음악으로 꼭 이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컸고요. 요컨대 [It happens]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지만, [WYK?]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 만든 앨범이죠. 사실 안 내도 됐던 앨범이고, 낼 생각도 없었어요. 사실 작년에 발매한 앨범을 내고 금전적으로든 체력적으로든 많이 고갈되어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약간 중독인 것 같아요. 끝나면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웃음) 사실 [It happens] 끝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끝나고 나니까 “또 할 수 있을 것 같네? 그럼 다시 모을까?” 지금도 막 뭔가 해보고 싶어서 근질거려요.

Q. 우연의 일치인지 트랙리스트도 재미있었는데요. [It happens]에서는 연주곡이 먼저 나오고 보컬곡을 배치했잖아요? 그런데 [WYK]는 역순으로 간다는 말이죠? 이런 구성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제: 우선 제가 보컬 곡을 자주 들어요. 오히려 연주곡을 잘 안 듣게 되더라고요. 성숙해졌다고 표현해주셨는데, 다른 사람들도 제 음악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힘이 빠졌다고 얘기하거든요. 어떤 식으로 연주해야한다는 강박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앨범에도 “내 앨범은 이래야만 해.”라는 고집도 사라졌어요.

Q. ‘그럴 수 있지’가 됐네요. (웃음)

제: 그렇네요. (웃음) 그러니까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저는 연주자니까 제 앨범에는 무조건 연주곡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은 “나는 지금 연주곡 안 떠오르는데? 나한테는 이 보컬과 저 보컬이 떠올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랑 하고 싶어.”라고 접근해서 만든 거죠.

저는 이번 앨범의 트랙 제목 첫 글자를 따서 ‘LOVE’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만들어둔 곡은 정말 많았지만, 앨범에 사용할 수 있는 곡은 단 4개였죠. 그리고 첫 트랙부터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와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앨범을 이렇게 구성했어요. 저번에는 잔잔하게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듣자마자 춤출 수 있는 느낌이 나면 좋겠다 싶어서 “Look Around (With Suyo)”를 첫 트랙으로 넣은 거예요.

Q. 음악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제: 이 앨범의 프로덕션에 ‘It happens’가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의무감을 버리고 마음 가는 대로 제작한 곡들이죠. 사실 음악을 만들면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이래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전부 안해도 되는 것들이거든요. 물론 누군가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실제로 필요할 수도 있고요. 가령 드럼을 처음 배울 때에는 메트로놈에 맞춰야 한다고 배우거든요? 그런데 스티비 원더의 음악은 메트로놈이랑 안 맞아요. 그런 걸 보면 결국 뭔가 해야만 한다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기만 하면 되는 거죠.

사실 흑인 음악의 출발은 거기서 봤다고 생각해요. 저항이요. 백인들이 춤춰야 하니까 천천히 치라고 했는데 “싫은데?”라고 하면서 비밥이 나왔고, “야, 재즈는 이래야 해.”라고 했는데 Herbie Hancock은 “싫은데?”라고 하면서 또 새로운 게 나오는 거죠. 새로운 건 “싫은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저는 항상 “왜 그래야 하는데?”가 깔려있어요. “이게 왜 있어야 하는데?”에 답하지 못하면 인트로든 아웃트로든 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죠. 저는 [WYK?]를 솔직하게 만들고 싶었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걸 느끼고 다음 앨범에 다른 프로덕션을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관점에서 [WYK?]는 실험이죠. 제 나름대로 이렇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내 메시지에 반응할까? 물론 저는 반응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죠.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아까 보컬곡이 많다는 말씀 주셨잖아요? 저는 그거부터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연주자 앨범인데 보컬곡이 왜 이렇게 많아?”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연주자 앨범에 보컬곡이 많은 거 괜찮은 것 같아요. 왜 연주자 앨범에는 연주곡이 많아야하죠?

Q. 사실 그럴 필요는 없죠. 누 가 정한 것도 아닌데요.

제: 그래서 저는 뭔가 도전해 본 거고, 반항해 본 것 같아요. 사랑을 얘기하는 것 치고는 조금 이상하긴 한데요. 결국 아닌 것에 있어서는 반항해야 하니까요. 저는 [WYK?]를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Q. 뭐 반항적인 사랑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1번 트랙 “Look Around (With Suyo)”얘기를 해볼까요? 제로후 님이 생각한 사랑의 어떤 모습을 담았나요?

제: 사랑을 하는 사람, 사랑이 있는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본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시야가 좁아진 채로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시야를 좁게 가져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단지 시선을 막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봐요. “이렇게 해야돼.”, “너 지금 이거 해야 돼.”라며 시선을 자꾸 한 쪽으로 돌리는 거죠. 그런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면 둘러볼 수 있게 되거든요.

저는 시야가 좁은 채로 살아가다가 주위를 둘러봤을 때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이렇게 안 살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외로움이 좀 크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개인적으로 변하고 있고, 함께 뭉쳐서 으쌰으쌰하는 그림이 없어지니까 혼자서 앞만 보고 가는 그림이 자주 보이죠. 저도 그렇게 살았고요.

그런데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죠. 그때, 제 욕심때문에 그들을 보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가끔 그런 때가 나타나면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자고 계속 되새겨요. 어떻게 보면 ‘Take it easy’라는 느낌도 있고요.

Q. 다른 곳에도 무언가 있으니 조금만 둘러보라는 느낌이네요.

제: 제가 애니메이션 <소울>을 엄청 좋아하는데요. 4번 봤거든요? 작품에서 주인공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으면서 헤메요. 그런데 다른 등장인물이 이렇게 말해요. “왜 지금 네가 있는 곳이 그곳이 아닐 거라 생각해?”

이미 본인이 생각하는 곳에 와 있는데 계속 찾아 헤메었던 거죠. 저도 이렇게 저렇게 되고싶다는 이상향이 참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인 것 같은데 왜 자꾸만 더 많은 것을 찾으며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는 트랙이죠.

Q. 좋습니다. 박현식 님이 편곡이랑 건반, 누기 님이 베이스, 기타에 유빈 님, 퍼커션에 상준님, 보컬에는 수요 님이 들어가셨잖아요? 1번 트랙을 프로듀싱하는 데에 이렇게 팀을 짠 이유가 있을까요?

제: 누기 형이 연주를 정말 잘하고 따뜻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꼭 한 번은 같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베이스리프를 짜면서 누기 형이 생각났죠. 되게 어려운 리프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잘 쳐줄 수 있는 사람이 누기 형인 것 같았거든요.

이 곡이 아프로 비츠잖아요? 리듬적인 요소가 센 곡이라서 건반이 이걸 잘 이해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식이 형은 윈디시티를 하고 있으니 완전 적임자죠. 편곡 면에서도 제게 큰 도움을 줬어요. 덥 이라든지, 영국식 음악, 레게 음악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많이 알려줬죠. 배운 게 워낙 많으니까 편곡에 아예 이름도 넣어버린 거예요. 형이 주는 아이디어나 들려준 음악이 저한테 큰 도움이 됐거든요.

퍼커션으로 참여한 상준이 형은 학교 동기인데요. 같이 얘기하다보면 뭔가 다 털어놓게 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약간 고해성사하듯이. 상준이형이 딱 그런 사람이에요. 제가 한창 힘들 때 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형이고, 연주도 잘하죠. 그래서 부탁했어요. 유빈이는 앞에서 길게 말했으니까 조금만 생략할게요.

수요를 데려온 건, 담백하면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목소리를 가진 보컬이라서예요. 그러면서도 보컬로서 자신의 멋도 잘 가지고 있죠.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이 곡을 프로듀싱하면서 그 누구도 튀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수요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탁했고, 역시나 너무 잘해줬죠. 사실 수요랑 뭔가 하는 건 무슨 큰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요라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적으로도 너무 좋은 사람이고, 믿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Q. 제로후 님의 방향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꾸린 느낌이네요. “Open UP! (With GAMAAL)”은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 사람들이 싸우지 말고 서로 대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곡이에요. 제가 평양 냉면을 좋아하는데요. 작년 겨울에 을지면옥 먹으러 갔다가 시위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걸 보면서 저렇게 갈라져서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서로 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Open UP! (With GAMAAL)”, “Look Around (With Suyo)”, “Elephant”는 속초에 머물면서 만든 곡인데요. 원초적으로 살자는 목표를 가지고 일주일동안 머물렀어요.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일어나서 작업하고 싶으면 작업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막상 거기 있으니까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산책하다가 작업하고, 배고프면 시장 가서 먹을 거 사와서 먹고, 다시 산책하다가 작업하는 식으로 살았어요. 근데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좋더라고요.

Q. 여유로운 상태에서 나온 작업물이었네요. 작업 과정에서도 그런 모습이 반영되었는지 궁금한데요. 레코딩 전에 가말님 께 보냈을 때는 어땠어요?

제: 속초에서 만들고 바로 가말한테 보내줬는데요. 그때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안 나와도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요. 프로듀서로서 정말 필요한 덕목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웃음)

종빈(가말)이랑은 워낙 친해요. 학교 4년 내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래서 서로가 편협한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거예요. 덕분에 오히려 “Open UP! (With GAMAAL)”이 담은 주제에 대해서 더 즐겁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이지만 결국 요즘 사람들이 좌우, 세대, 성별로 갈라져 싸우는 이유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닫아버리고 당신이 틀렸다고 주장하니까요.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마음을 열어보라고 제안하는 것 밖에는 없더라고요. 서로 생각을 나누다보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잖으니까요. 그런데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서로 틀렸다고만 주장하면 대화를 할 수 없죠.

전부 제 생각인 거잖아요. 사실 상대방의 이야기가 제가 이해한 거랑 다를 수도 있고, 막상 들어보면 저쪽 의견이 더 좋을 수도 있죠.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자라는 생각으로 살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살 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Q. “Open UP! (With GAMAAL)”에는 키보드에 찬혁님, 베이스에 수빈님, 기타에 유빈님, 보컬로 가말님이 들어왔잖아요? 팀을 이렇게 꾸린 이유가 있을까요?

제: 제로후 유니버스가 같이 했는데요. 친구들이랑 만드는 트랙이 있었으면 했어요. 친한 사람들끼리 낼 수 있는 바이브를 담고 싶었거든요. 작업도 편안하게 했고요.

Q. 어쩐지 합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럼 이제 3번 트랙 “Visiting me (With YUJIN KIM)”로 넘어가볼게요. 보컬에 유진님, 키보드 민준님, 베이스 환수님, 기타 상준님 들어가 계시잖아요? 약간 어벤저스 느낌이 나는데, 왜 이런 멤버를 구성하셨나요?

제: “Visiting me (With YUJIN KIM)”의 코드를 쓰고 인스트루멘탈을 만들 때, 숲 같은 공간감을 많이 떠올렸어요. 숲속에서 나를 찾아 헤메는 느낌이요. 그때 떠올린 게 Gretchen Parlato라는 미국의 재즈 싱어였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인데, 라이브를 보면서 너무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시에 유진 님도 같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럼 재즈뮤지션이랑 같이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팀을 궁리했었죠.

그런데 제가 마침 오코예를 같이 하다보니 상준이 형이랑 환수 형이랑 합주를 자주 하잖아요. 그래서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RSS 하우스에서 녹음했는데요. 제게도 도전적인 곡이었는데 잘 나온 것 같아요.

Q. 메시지 차원에서는 어떤 것을 담고 싶으셨나요?

제: 자기를 들여다봐야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저는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일면을 마주하기 싫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걸 피해왔어요. 저는 이상향이 강한 사람이라 더 그랬고요. 하지만 그걸 마주해야 진짜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계속 마주보고, 이야기해보고, 내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면서도 그걸 사랑해야하죠. 그걸 계속하다보면 이런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돼요. 저는 그게 정말 큰 사랑이라고 느꼈어요. 다른 곡에 비해서는 조금 딥한 메시지를 가진 곡입니다.

Q. 이후에 바로 “Elephant”가 나오는데요. 주변을 보고,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들여다본 뒤에 코끼리라는 테마를 가진 곡이 나오는 점이 흥미로웠거든요. 마지막 심상으로 코끼리를 집어넣은 이유가 있을까요?

제: 우선 제가 코끼리를 정말  좋아합니다. 작업실 바탕화면도 코끼리일 정도로요. 코끼리는 착해요. 특히 눈이 정말 선한데요. 보고있으면 힐링이 돼요. 코끼리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무리에서 누가 다치면 기다려준대요. 웅덩이에 빠지면 공격받지 않게 둘러싸서 기다려주고요. 저는 이게 지금 우리 세상에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이 잘 안보이는 것 같거든요. 코끼리는 울 때 “뿌우-”하고 울잖아요? 그래서 관악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맞아요. 삼수님 색소폰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민혁님의 신스도 그런 질감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고요. 베이스의 요바스 님까지 해서 이 곡에 이런 멤버를 모은 이유도 궁금해요.

제: 브라스가 꼭 있었으면 해서 오코예 같이 하던 삼수형을 모셔왔죠. 민혁이랑 요바스 는 저보다 동생들인데요. 제가 이번 앨범에 사람을 모아서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세대간 연결이었어요. 지금 연주자 씬에서 세대간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서로 마주칠 일도 많지 않고, 마주치더라도 인사만 드리지 같이 연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죠.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만드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 의미에서 제 또래나 더 어린 연주자는 지금 환수 형 세대 연주자한테 배운 경우가 많거든요? 한 앨범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연주하는 그림이 나오면 되게 멋있잖아요. 연주자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도 계속 그런 뮤지션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하고요.

Q. 그렇게 “Elephant”에서 세대를 연결하고 함께 가자는 메시지나 나오며 앞글자로 ‘LOVE’가 완성되는거군요. 좋습니다. 이제 마무리 질문만 남았네요. 혹시 앨범 관련 활동으로 정해둔 게 있으신가요?

제: 우선은 [It happens]중 몇 곡과 “Look Around (With Suyo)”를 인스트루멘탈로 편곡한 라이브 필름이 나와있는데요. 그 밖에 다른 콘텐츠로 더 자주 인사드리려고 노력중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제로후라는 이름으로서는 음원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과 오프라인 라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다르게 가려고 하고 있어요. 공연장에서는 좀 더 재미있고 신나는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편곡을 하고있고요. 음원은 음원대로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 우선 긴 인터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늘 앨범을 만들 때마다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의 삶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당연히 있죠. 하지만 그것에 앞서서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하고싶어요. 제 음악이 사람들의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는데요. 이번 [WYK?]도 들으시는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그럼 여기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