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윤다혜(이하 ‘윤): 안녕하세요. 정규 1집 [개미의 왕]으로 인사드린 윤다혜입니다.
Q. <넋이라도> 스핀오프 프로그램 <소울딜리버리의 노가리>에 출연하셔서 입담을 보여주셨죠. 그 이후 거의 1년이 지났는데, 최근 근황은 어떠세요?
윤: 많이 쉬었어요. 외주 작업을 위주로 하면서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겨울방학 같은 느낌이었어요.
Q.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1집 가수, albumer’라고 적어두셨더라고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쓰게 되셨나요?
윤: 이건 전후 사정이 좀 중요해요. 예전부터 저를 알고 계신 분들을 위한 일종의 특전 같은 거였거든요. 원래는 바이오에 ‘1집 가수 지망생, albumer’라고 적혀 있었어요. 발매가 되기 전에는 “곧 나올 것이다”라는 식의 제 나름 홍보였죠. 앨범이 드랍된 뒤에는 지망생을 빼고, ‘1집 가수/앨범 발매자’처럼 정리되는 느낌으로 바꿨어요.
Q. 한국대중음악상 R&B/소울 앨범·노래 부문 노미네이트 축하드립니다. 소식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요?
윤: 거의 월드컵 우승한 사람처럼 책상을 쾅쾅 치면서 기뻐했어요. 사실 후보자는 사전에 미리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곧 서른이다, 성인 여자 된 마음으로 참자.’ 하면서 버텼어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Q. [개미의 왕]은 감정적으로도 강도가 높은 앨범인데, 이런 앨범이 노미네이트됐다는 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윤: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이유 중 하나가, 앨범이 사람들 귀에 닿기까지 제가 한 게 솔직히 많지 않아요. 발매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고, 제가 막 발로 뛰면서 세일즈를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매거진이나 리드머 같은 평론지, 큐레이션 매거진에서 많이 소개해 주셔서 입소문이 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번 일은 제가 좋은 사람들, 좋은 리스너들을 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진짜 요행이라고 느껴요. 제가 세일즈는 거의 못 했으니까요.
Q. 풀 인터뷰인 만큼 과거 이야기부터 짚어볼게요. 음악을 처음 좋아하게 된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윤: 제일 마지막으로 또렷한 기억은 미취학 아동 때쯤이에요. 저는 태어나서 늘 또래 평균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느꼈고요.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어릴 때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니까요. 초등학교 때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쓸쓸하다 보니 인터넷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그때 공CD를 본체에 넣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순서를 짜서 나만의 베스트 앨범 같은 믹스셋을 짜서 구워 듣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웹서핑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디바 류의 노래들이나 히트곡, 베스트 앨범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집에서 혼자 따라 부르곤 했어요.
Q. 당시엔 어떤 음악을 들으셨어요?
윤: 어릴 때니까 그 당시 제가 들을 수 있는 것들은 휘트니 휴스턴, 드림걸스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라 비욘세도 좋아했고, 샤키라, 에이머리 같은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 전성기였다고 느껴요. 3평 남짓한 컴퓨터 방에서 그런 음악들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간략히 요약하자면, 결국 잘하는 걸 했더니 즐거웠던 타입이었던 거죠.
Q. 그러면 음악을 직업으로 생각하게 된 건 언제쯤이었나요?
윤: 저는 고3 때 실용음악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왜 그제서야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알게 되자마자 ‘그런 게 있다고? 그러면 가야지.’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열정이 폭발하기 보다도요. 10대 때는 실패를 별로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당연히 가야지.” 같은 직관이었던 것 같아요.
Q. ‘듣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넘어간 건 언제였나요?
윤: 대학 들어가서요. 그전에는 보컬리스트와 싱어송라이터 같은 직업적 세분화가 제 안에 없었고, 대학에 가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노래를 직접 지어서 부르기도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저희 학교에서는 그런 측면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어요. 학교에서 컴퓨터 미디 음악을 배울 환경도 있었고, 수업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학교가 안성에 있어서 정말 심심했거든요. 자취방에 혼자 있으니 할 게 없어서 그때 처음 노래를 지어서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퀄리티는 참담했지만, 그때 써둔 가사나 멜로디를 떠올리면 [개미의 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Q. 목소리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본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좋아하셨나요?
윤: 노래할 때는 목소리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말할 때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목소리가 크고,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제가 ‘승기를 잡으려고’ 더 세게 말하는 스타일이라 누군가에게는 거칠게 들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제 음색이 노래를 지어 부르기에 충분하냐/아니냐 같은 고민은 크게 없었어요. 스킬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제 목소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Q. 보컬 스타일이 발전한 데에는 무엇이 가장 컸나요? 학원/수업 같은 훈련, 자가 학습, 현장 경험 중에서요.
윤: 필드 경험이 제일 컸어요. 현장에서 계속 ‘더 프로페셔널하게 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를 고민하게 되니까요. 보컬적으로 말하면 소리와 호흡의 비율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뉘앙스가 엄청 달라져요. 예를 들어 같은 “사랑해”라도 소리 100으로 갈 때와, 소리, 호흡의 농도를 바꿀 때 전혀 다른 감정이 되거든요. 그걸 연구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고요. 제 감정의 세밀함이 한 번 들었을 때 설득력 있게 전달되길 바랐어요. 이건 부딪혀보고, 설득됐는지 안 됐는지 임상 실험하듯 필드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웠어요.
Q. 본격적으로 필드에 발을 들인 건 언제쯤이에요?
윤: 재수를 해서 17학번이고 18년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19년에 휴학했어요. 그때부터 규모 차이는 있어도 페이를 받고 일을 했으니, 2019년부터 프로로서 필드에 들어온 셈이에요.
Q. 그 시기에 어떤 경험들을 하셨나요?
윤: 휴학한 이유는 지금 생각하면 ‘패기’ 하나였던 것 같아요. 박문치(이하 문치) 언니랑 같이 있으면 계속 재밌는 일이 생기는데, 안성에 있으면 스케줄에 제약이 너무 크더라고요. 그래서 “수도권에 있어야겠다” 하고 무대포로 휴학해버렸죠.
문치 언니랑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아무것도 신경이 안 쓰였어요. 온스테이지, EBS 공감, 각종 페스티벌을 하면서도요. 그게 얼마나 레거시가 있는 프로그램인지 잘 몰랐어요. 그냥 재밌어서 했던 거죠.
서울에 와서 페이를 받기 시작하면서는 ‘나보다 인생을 더 재밌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행복했어요. 매일이 축제처럼 느껴졌어요.
Q. 그런 일의 감각을 박문치 님에게서 배운 것도 있나요?
윤: 맞아요. 그때는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야, 내일 페스티벌 가자. 가서 물총 싸움 한판 하자.” 같은 느낌이었죠. 일이 유흥처럼, 여가처럼 함수 변환된 느낌이 있었어요.
Q. 가사 이야기도 해볼게요. 일상적인 단어와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섞이는 방식이 인상적인데,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윤: 예전엔 좋아했는데, 앨범 준비하면서는 거의 못 읽었어요. 대신 글을 정말 많이 썼어요. 언제 쓰든 가사엔 엄청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토막글을 계속 써두고, 제 기준에 감각적이라고 여겨지는 문장들을 항상 적어뒀어요. 사전처럼요.
Q. 어떤 시기에 그런 글을 많이 쓰게 됐나요?
윤: 2020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때 거의 오춘기, 3차 성징이 세게 왔거든요. 돌이켜 보면 저는 20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집에 싸구려 와인 같은 걸 데스크탑 앞에 한 병 놓고 계속 글을 쓰기만 했어요. 그 글들이 결국 앨범의 소스가 됐죠.
Q. 그때 쓴 글은 어떤 성격이었나요?
윤: 시나 산문 같은 느낌이었어요. 자기 연민이 심했죠. ‘왜 세상이 날 못살게 굴까?’ 같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냥 하소연을 그대로 쓰기엔 명분이 없다고 느꼈어요. 입에 풀칠하면서 살고 있고, 친구도 많고, 잘 살아는 있는데요. 그래도 제 마음은 계속 아프니까요.
그러면 그걸 내 메모장에 나만 보게 썼을 때 어떻게 하면 안 부끄러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종의 암호처럼 글을 써야겠다 싶었어요. 마음을 우회하고 또 우회해서, 나만 알아볼 수 있게요. 지금 보면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메모가 많아요.
Q. 그 시기의 우울이나 염세가 멋있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나요?
윤: 있었죠. 어느 20대나 비슷할 것 같아요. 염세적이고 울적한 모습이 쿨해 보이기도 했고, 좋아하던 문학인들도 다 어딘가 그늘져 있으니까 나도 그런 이미지에 취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어요.
Q. 그렇다면 필드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상의 리듬 같은 것들이 변한 부분이 있나요?
윤: 2019년부터 지금까지 편안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일정, 수입, 관계 모든 게 서투르고, 실수를 하다 보니 초반엔 그런 흔들림에 감당을 잘 못했어요. 지금은 그 바다 위에서 서핑은 조금 할 수 있는 정도가 됐지만, 완전히 안정적이었던 순간은 없었어요.
Q. 그때의 불안정은 어떻게 버텼나요?
윤: 망나니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곤 했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와인을 마시며 글을 쓰는 것도요. 그 당시에는 잠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고 당장의 괴로움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한 번쯤 해볼 만했어’ 하는 생각도 있어요.
Q. 이제 본격적으로 앨범 이야기 전에, ‘라라’ ‘달라’ ‘윤다혜’ 이야기를 짚고 갈게요. ‘라라’는 문치 님과 함께하게 된 맥락이 있는데, 김트와친구들의 ‘달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고, 그 이름은 왜 쓰게 됐나요?
윤: 두 팀의 활동 시기가 겹쳤어요. 문치도 제 학교 사람이었고, 김트와친구들도 제 학교 친구들이었어요. 처음엔 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마음이 맞고 프로젝트가 커진 느낌이었죠.
그리고 그 시절(17~19년쯤)은 예명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다들 멋들어진 이름을 갖고 있었고요. ‘라라’는 문치 언니가 거의 프리스타일로 세계관을 잼하듯 만들어낸 느낌에 가까웠고, ‘달라’는 김트와친구들 드러머 예찬이가 “달라 어때?” 하고 툭 던진 게 시작이었어요. 사실 그 이름으로 오래 한 건 아니에요.
여러 이름을 써보고 나니까 결국엔 제 이름으로 불리고 싶더라고요. 이름이 너무 많으면 어디서 누구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제가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때는 ‘윤다혜’라는 실명이 더 튄다고 생각했어요. 안 어울려서 오히려 매력적인, 그런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외국인들도 ‘윤’은 생각보다 발음하기 어렵지 않거든요.
Q. 마인필드/AP Alchemy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윤: ‘라라’로 활동하던 시기에, 지금 회사 이사님(성국 님)이 계속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그때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제 이름으로 된 디스코그래피가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도 되나?’가 걱정됐어요. 문치 언니가 일하는 걸 어깨너머로 봐서 애매하게 아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회사 비전이나 다양한 방향을 계속 설명해 주셔서, 마지막에는 ‘새로운 창구가 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저는 큰 결정을 할 때 결국 “새로운가/뻔한가, 재밌는가”로 단순하게 결론내리는 편인 것 같아요.
Q. 협업할 때 윤다혜님이 중요하게 보는 건 뭔가요?
윤: 프로젝트에서 지휘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해요. 저는 프로젝트를 일종의 배라고 생각하고, 선장은 한 명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문치 언니처럼 선장이 정해져 있으면, 저는 유연하게 따라가면서 제가 줄 수 있는 의견을 조타수처럼 보태는 편이고요.
반대로 AP처럼 제 이름을 걸고 들어간 작업은 “내가 선장이어야 한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AP 알케미의 컴필레이션이나 [개미의 왕] 같은 경우에는 혜민송, 고후 같은 분들이 제 의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가능했고요.
선장이 따로 있는 케이스는 비트만 먼저 받아서 따로 작업해도 상관없어요. 선장이 편한 방식이 있으면 그걸 따르는 게 오히려 좋아요. 그런데 제가 선장인 경우에는 사운드 소스부터 같이 고르는 게 마음이 편해요. 비트를 다 만들어놓으면 돌이키기 어렵잖아요. 시작부터 의견 공유하면서 가는 방식이 저한테 맞아요. 그래서 [개미의 왕]은 비트만 먼저 받은 트랙이 한 곡도 없어요.
Q. 그럼 ‘선장’은 어떻게 정해진다고 생각하세요?
윤: 송캠프처럼 초면인 작가가 많은 현장에선 들어가서 사람들을 보고 자연스럽게 정해져요. 누가 더 장르 이해가 깊고, 누가 더 결단을 하는지, 의견을 내는 방식이 어떤지 보면서요. 선장은 누가 해 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합을 맞추다 보면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고, 저만큼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바로 협조 모드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내가 키를 잡아야지”하는 마음이 생기죠.
Q.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개미의 왕]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 텐데요. 일단 선공개 싱글이었던 “신 시티”의 앨범 커버를 볼게요. 개미 모양의 헬멧을 사용하셨는데 어떤 느낌을 주고 싶으셨어요?
윤: 여느 프로젝트처럼 이번 작업도 처음 의도와 많이 달라졌는데요. 헤드기어는 최초의 아이디어가 끝까지 살아남은 케이스예요. 꼭 쓰고 싶었거든요.
Q. 왜 헤드기어를 선택하셨어요?
윤: 3D 아티스트 김영균 작가님이 만들어주셨는데요. 개미처럼 보이고 싶어서였어요. 의인화된 개미라고 할까요? 현미경으로 개미 얼굴을 가까이서 보면 되게 짜증 나게 생겼거든요. 약간 ‘윽…’ 하는 느낌? 사람 비율의 개미가 있으면 분명 ‘윽…’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헤드기어가 아니고서는 제가 개미처럼 보일 방법이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왜 하필 ‘개미’였냐는 건데요. 사실 그 부분을 뮤직비디오를 통해 최대한 풀어내고 싶었어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멋진 방법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금 어렵게 됐죠. 이 앨범은 시리즈물처럼 연재하듯 가져가고 싶어요. 제 생각에도 되게 근사한 캐릭터거든요. 추후 기회가 되면, 왜 개미여야 했는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답변 드리고 싶어요.
Q. 아등바등대는 삶일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삶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살아가더라도 딱히 바뀌는 건 없는 속성도 있을 수 있고요.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윤: 맞아요. 너무 정확히 얘기해주셨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개미의 왕’은 보잘것없는 것들의 왕이에요. 진짜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것들. 누군가는 혐오하기도 하고요.
개미는 게으름이고, 교만이고, 불성실함이고, 더러움이고, 무식함이고, 음란하고, 자기파괴적인 것들이에요.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하수구에 켜켜이 쌓여 태어난 게 개미예요.
그런데 ‘왜 개미여야 했는지?’는 아마 평생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아는 건 세상에 저랑 제 엄마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가능하면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어떤 식으로든 감상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Q. 뭔가 트리거가 있었고, 거기서 비롯된 캐릭터라고 보면 되겠군요.
윤: 맞아요. 하지만 결국에는 거대한 메타포고, 그게 무엇을 상징하냐라고 했을 때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들이 되는 거죠. 게으르고, 보잘것없고, 꼴 보기 싫고, 교만하고, 오만하고, 음란하고….
Q. 7대 죄악까지 연관이 있는 걸 보면, 단단히 연결된 트리거가 있었나 보네요. 재미있습니다. 이번 앨범은 고후 님과 혜민송 님이 핵심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혜민송 님은 AP 알케미에서 작업하면서 만났을 것 같은데, 고후 님하고는 어떻게 작업까지 닿았는지가 궁금하거든요. 원래부터 교류가 있으셨나요?
윤: 원래 알고 있던 사이였어요. 서로의 재능, 그런 부분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었고요. 뮤지션끼리 만나면 으레 “작업 같이 해보자!” 하잖아요. 저희도 처음엔 그렇게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진짜로 같은 작업실에서 세션을 시작하게 된 거죠.
Q. 외부에서 맡은 다른 작업 때문에 만나게 된 건가요?
윤: 아뇨. 그냥 만나자고 했죠. 작업실에 딱 도착했는데 오빠도 저랑 비슷한 걸 듣는 것 같더라고요.
Q. 어떤 걸 들으셨는지 기억 나세요?
윤: 좋아하는 게 비슷했어요. 함축적인 걸 좋아했고, 들려주려는 의도가 다채로운 폼의 음악을 선호했던 것 같아요. 사운드도 그렇고요. 오빠랑 저 둘 다 입체적인 음악을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막상 개인 작업물로 그런 걸 내본 경험은 둘 다 없었죠.
Q. 좋아는 하지만 구현해 본 적은 없었던 상황이었네요.
윤: 그래서 ‘만약 우리 둘이 작업을 한다면 이런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축적이고, 의도가 다채롭고, 입체적인 음악.
‘개미의 왕’ 데모가 가장 첫 번째 작업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걸 고후 오빠랑 먼저 만들고, 혜민이랑은 ‘귀 있는 자’를 만들고 있었어요. 당시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던 덕분에 제가 거의 맛탱이가 가 있었던 거죠.
그러던 중에 고후 오빠가 혜민이까지 불러서 셋이 같이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어요. 저는 정말 가볍게 승낙했죠. 좋은 사람 둘이랑 같이하는 거니까요.
Q.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하세요?
윤: 프로듀서 각각과 데모를 만들어가고 있을 때니까, 작년 1~2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게 된 건 사람이 좋은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어요. 고후 오빠가 작업하다 막히는 음악이 있었는데, 혜민 씨랑 같이 하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앨범은 셋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고후 오빠랑 혜민이는 그때 시너지를 그대로 이어서 팀으로 다른 아티스트 작업도 하고 있어요. 좋은 팀이 된 거죠.
Q. 다혜 님이 봤을 때는 서로 어떤 케미가 나오는 것 같아요?
윤: 태홍이 오빠(고후)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좋아요. 이 일이 결국 어떻게 흘러갈지, 이렇게 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전반적인 견적을 낼 줄 알거든요. 혜민이는 당장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완전 몰입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요.
고후 오빠랑 저는 ‘골든 리트리버 과’라고 얘기하는데요. 혜민이가 아이디어를 막 던지면 고후 오빠가 그걸 기가 막히게 배합해요. 그리고 고후 오빠의 센서티브하고 사람을 건드리는 지점이랑, 혜민이 특유의… 있잖아요. 갑자기 툭 치는 거.
Q. “이게 뭐지?” 하는 그 부분이요?
윤: 네. 갑자기 원펀치로 ‘빵!’ 치는 거요. 저는 이상하게 그 조합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후 오빠가 ‘화성적인 부분’을 많이 건드려주면, 혜민이가 질감이나 리듬 다이 같은 걸 많이 잡았어요. 둘 사이에 명확한 파트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의견 교류가 잘 됐고요.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둘이 지금까지도 계속 같이 일하는 건 서로 보완이 잘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좋습니다. 그래도 제작 전반의 키는 다혜 님이 계속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선장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다혜 님이 했던 역할도 궁금해요.
윤: 맞아요. 결국 밑그림은 제 앨범이니까 메인스트림은 제가 제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준비해 가는 게 프로 선수들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런데 제가 개떡같이 말해도 둘이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제가 뭔가 던지면 “이런 건 어떠냐”고 제안해 주더라고요.
그리고 저희는 세 명이잖아요. 거기에 맞춘 나름의 시스템도 있었어요. 작곡부터 믹스까지 어떤 작업을 하든, 세 명 중 둘이 오케이 하면 남은 한 명은 무조건 절대 복종. 셋이 취향도 균형이 잡혀 있어서 밸런스가 좋았거든요. 덕분에 모두가 한 번씩 자기 의견을 꺾은 적이 있었어요.
Q. 삼권분립이네요.
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아이디어 공유하는 데 걸리는 부분이 없었어요. 대신 제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자세히 짜가진 않았는데요.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세세하게 준비해 갔어요. “이 방향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게 선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고후 오빠랑 혜민이는 진짜 프로예요. 아웃풋이 잘 나오는 걸 넘어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제공해 주니까 작업하는 내내 ‘두 사람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상 이 앨범의 핵심 인력이죠.
Q. 좋습니다. 발매 전략을 보면 앨범으로 정면승부하는 그림이 그려져요. 선공개 싱글 하나 내고 바로 정규를 공개해 버리셨어요. 앨범으로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는데, 이런 결정을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윤: 사실 제 주변 동료들은 만류했어요. 전략적으로 불리할 테니 재고해 보라고요. 시장성에 관한 얘기이기도 했죠. 주변 음악하는 동료 중에는 “더 이상 앨범 단위로는 안 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앨범이어야만 했어요.
Q. 이유가 궁금해요.
윤: 제가 너무 오랜 시간 뜸을 들인 탓이죠. 활동을 2019년에 시작했다고 치면, 햇수로 6~7년 차에 처음 발매한 앨범이잖아요. 제 디스코그래피에서 ‘제 얘기가 담긴 앨범’을 처음 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걸 싱글 컷으로 발매하면, 제가 한이 서려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넋매거진 에디터 님은 아시잖아요. 저 말 많은 거. 말 못 하고 살면 답답해서 죽거든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의견을 들었을 때, 충고는 고맙지만 “이건 정규로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때 제가 똥고집 피우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이 정규가 앞으로 내가 할 모든 활동의 음악적 스탠다드가 되어줄 거다.” 그만큼 공들여 만들었고, 그만큼 확신했어요.
친구들이 두 시간에 걸쳐 “잘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제가 그렇게 말해버렸으니, 진짜 패고 싶었을 거예요. (웃음) 근데 제 마음은 그랬어요. 이 모든 게 오히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도 이 앨범이 있으면 저는 별로 두렵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젠가 제 니즈와 맞지 않는 상업적인 기회가 올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프로젝트가 제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요. 아예 통제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앨범이 저의 스탠다드라면, 저는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개미의 왕]이 저를 지탱해 줄 거라고 확신하고 투자했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제가 친구들한테… 이 얘기하면 사람들이 오만하다고 할 것 같은데….
Q.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확신이 있잖아요.
윤: 제가 그때 친구들한테 똥고집 피우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나는 무조건 이 음반을 내고, 국내 권위 있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될 거다.”
Q. 실현됐네요.
윤: 그러니까요. 지금 친구들이랑 난리 났어요. “역시 말은 뱉어놓고 봐야 한다.” 저도 지금 놀라울 따름이에요.
사실 그때는 솔직히 조금 치기 어린 마음으로 했던 말이긴 했죠. 여담이지만 노미네이트 되고 나서 대학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10년 전쯤에 “한대음 노미 될 거다”라고 말했던 거 기억 나냐고 하더라고요.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더라고요. (웃음)
역시 사람은 뿌려놓고 봐야 하나 봐요. 예전엔 제가 맨날 말만 하고 허풍 떠는 스타일인 게 약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니까 아닌 것 같아요.
Q.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네요.
윤: 네. 진짜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가 봐요. 아무튼 이번에는 타이밍도 좋았고, 여러 업계 분들이 입소문 내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가 진짜 중요하죠. 이걸 행운에서 끝내지 않기 위해 더 매섭게 쏴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가 할 말이 너무 많았어서. 앨범이어야만 했습니다.
Q. 할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 안에 쌓였던 것들이 많았을 수도 있었다는 거네요. 앨범을 만들기 전의 다혜 님은 어떤 상태였는지 궁금해요.
윤: 앨범 만들기 전이 제일 길고 씁쓸한 방황의 시기였어요.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던 상태였고요. 그래서 앨범 메시지들이 너무 개인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게 나열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저는 앨범이 리스너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를 위해 기록한다”는 마음이 우선이었어요. 다만 이 기록을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친절하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사운드와 노래가 기깔났어야 했다고 생각했죠. 그 당시에 제 상태가 너무 기묘했고… 냄새가 났어요. 안 좋은 냄새가 많이 났죠.
Q. 영혼이 탁한 상태였군요.
윤: 정말요. 지금 시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 시기에 정신줄 놓지 않고 뭐라도 만들어 놨다는 점이에요. 그 시기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하고 기록했던 게 정말 괜찮았죠. 꼭 필요한 시기였다고도 생각해요.
Q. 기록이 일종의 테라피로 작용했네요.
윤: 정말로요. 그리고 제가 앨범이나 서사를 친절하게 설명한 뒤에 “같이 감상해 달라”고 한 적은 없잖아요? 하지만 [개미의 왕]을 통해 전달한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 한 사람이라도 “나 이 감정 뭔지 알 것 같아”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저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
Q. 좋습니다. 지금 얘기 들어보니 고후 님하고 “개미의 왕”이라는 노래를 작업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개미의 왕”이라는 표현이 머리나 마음속에 있었나요?
윤: 맞아요. 오히려 그 네 글자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작업들이 파바박 됐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을 내고 진짜 치유받았어요. 특히 “Funeral Freestyle”이 그런 곡이에요.
저는 정서적으로 죽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이 정도면 나는 죽은 거다”라고 말하던 상태가 있었죠. 방바닥에 누워 있었고요.
그러고 나서 곡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장례지도사처럼 작업했죠. 스스로에게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처럼요. “좋은 곳 가시라”고. 그러고 나니까 더할 나위 없이 개운했고, 만약 비슷한 깊이의 수렁에 다시 떨어진다고 해도 앞으로는 그때만큼 무력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무기가 몇 가지 늘어난 느낌이죠. 그 정도로 저에겐 치유의 시간이었거든요.
Q. 여러 일들이 있었던 걸로 보이네요. 그렇다면 이 앨범에서 본인이 가장 솔직히 드러난 트랙은 무엇인가요? 전부 그런가요? 한 곡만 꼽는다면요.
윤: (정적)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 …최고. 진짜 죽을 때까지 들을 것 같아요.
Q. 좋아요. 이제 트랙별로 털어볼게요. 먼저 “little drummer boy”인데요. 개인적으로 연약한 전사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캐럴 같기도 했어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뜻이나 이미지로 만든 곡인가요?
윤: 말하자면 감각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이미지 그 자체요. 헌신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생각해요. 헌신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헌신이 얼마나 이기심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헌신은 생각보다 인위적이잖아요.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Q. 남들이 봤을 때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의아할 정도로 하는 경우도 있죠. 정신 나갈 정도로 좋아서 그런 경우처럼요.
윤: 그렇죠.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다가 깼을 때 사랑을 느끼곤 하거든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이 너무 무방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너무 무방비하게 자고 있으니까요. 그때는 다른 생각이 안 들죠. 그냥 잘 됐으면 좋겠고. 심지어 이재용이나 젠슨 황도 잘 때는 무방비하잖아요. 사람이 가장 연약해지는 순간이죠.
그래서 연약한 이미지가 느껴지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약한 것들을 소중히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작업했던 곡이었죠.
그리고 제가 그렇게 곡을 써서 스스로 치유받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제 자신에게 그 정도로 헌신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요. 그래서 그 뉘앙스가 너무 예쁘기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죠. 헌신의 여러 면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Q. 곡 시작할 때 마칭 리듬(행진)으로 들어가잖아요. 어떤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윤: 이 곡은 앨범 전체에서 가장 즉흥적이었던 곡이에요. 원래 이날 작업하기로 했던 뉘앙스나 테마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런 날 있잖아요. 그냥 날이 너무너무 좋은 날. 작업 전에 나가서 담배를 하나 피우는데, 암만 생각해도 오늘 하기로 한 걸 못 하겠더라고요. 안 하고 싶었어요. 기분이 너무 충만해서요. 내 앞에 꽃이 휘날리고 있고, 너무 따뜻했어요. “이거 안 되겠는데? 틀자.” 그래서 가장 즉흥적인 곡이 됐죠. 테마 선정부터 진행까지 태홍이 오빠랑 혜민이랑 프리스타일 랩 하듯이 치열한 공방을 하면서 쌓아나갔어요.
Q. 그럼 사실 인트로도 즉흥적으로 정해졌겠네요?
윤: 웃긴 건 그날 데모를 만들자마자 “1번 트랙으로 해야겠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네요. 그때 뭐에 홀렸었나?
Q. 앨범을 쭉 들어보면 사운드 흐름이나 트랜지션이 잘 맞물려서 스피디하게 넘어가잖아요. 앨범 자체에 일종의 서사가 있다고 봐도 되는 거죠?
윤: 그럼요. 프로듀서들한테는 가감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먼저 했었어요. 생각해 보니 엄마랑 저 외에도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두 명 더 있는 거네요. (웃음)
그만큼 공명이 필요하다고 여겼어요. 너무 개인적인 감정이고, 고찰이었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해되는 단어를 우리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해서든 서로 맞아떨어지는 포인트에서 마주쳐야 했어요. 그래서 프로듀서들에게는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말 가감 없이 이야기했죠.
Q. 그걸 관통하는 게 “개미의 왕”인 건데… 궁금한 게 많은데 참…
윤: 또 이렇게 좀 꺼드럭대야 사람들이 궁금하죠. (농담)
Q. 그렇네요.(웃음) 일단 서사가 있는 거잖아요. 그럼 앨범을 들을 때 어떤 길라잡이를 제시할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윤: 저는 전체적으로 사랑 노래라고 생각해요. 오프 더 레코드 부분에서 넋매거진 에디터 님한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를 말했잖아요. 사랑이 생각보다 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요. 이 파츠가 빠져서 이해가 어려우실까 봐 말을 좀 망설였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1번부터 10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사랑’인 것 같아요.
‘개미의 왕’도 결국 삶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죽고 싶었던 거잖아요. 너무 삶을 사랑했는걸. 너무 즐거웠고. ‘카스텔라’는 말할 것도 없고요.
Q. 어떻게 보면 그러네요. ‘음란’이라는 키워드도 남들이 보면 그냥 음란일 수 있지만, 그 안엔 색욕 같은 게 있는 거고요. 교만이나 나태도 근원적으로 보면 사랑이 있을 수도 있고요.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그 안의 감정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는 앨범처럼 보여요.
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파고드실 분들을 위한 말이라면 삶에 대한 얘기라고도 생각되고요. 제가 살아가면서 마주친 파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Q. 이번 인터뷰는 입문용 인터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윤: 저는 원작자 입장에서 뭔가를 말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할리스’라는 세 글자를 본다고 생각해 볼게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도 ‘할리스’가 주는 감각은 각자 느끼잖아요. 그리고 모두 다르게 느끼죠.
“개미의 왕”이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저만 알고 있는 단편적인 기억이니까요. 하지만 “개미의 왕”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과 뉘앙스의 감각은 모두에게 따로 있죠. 저는 그게 되게 소중하고 좋았거든요.
제가 아무 설명 없이 “이 앨범의 이름은 [개미의 왕]이야”라고 선언하니까, 모든 사람이 이 앨범을 그렇게 부르고 자기만의 감각을 덧붙인다는 게 진짜 재창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2차 가공 같기도 하고요. 되게 즐거워 보였어요.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에겐 어려운 감각인 거죠. 그것 나름의 즐거움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능하면 두루뭉술하게 남겨두려는 이유는, 각자의 필터를 거쳤을 때 더 다채로워질 수 있는 앨범이지 않을까 해서예요. 그래서 가사도 좀 모호하게 썼거든요. 넋 매거진이나 다른 매체에서도 그걸 많이 짚어주셨는데요. 그렇게 열어두니까 해석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그게 이 앨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 그럼 가사를 쓸 때 모호함을 유지하려고 수정을 많이 하셨나요?
윤: 그러진 않았어요.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어릴 때 암구호처럼 만드는 게 습관이었다고 했잖아요. 그게 뱄나봐요. 배열이나 단어들도 저만 알아볼 수 있게 돼 있고요. 악취미죠.
근데 제가 아무리 암구호처럼 나열하더라도, 다들 아는 단어잖아요. 그래서 단어를 봤을 때 자기만의 감각이나 인상은 존재할 거예요. 저는 그게 궁금해요. 제 생각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들었는지가 더 궁금하거든요. “어떤 감각이었을까, 어떻게 2차 가공했을까, 어떤 창작을 했을까”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더 좋은 타이밍에 예쁘게 구색 맞춰서 단서 같은 것들을 공개하고 싶어요. 저한테 [개미의 왕]은 이미 조립된 인형이 아니거든요. 각각의 파츠가 전부 떼어진, 조립 전 프라모델 같은 느낌의 앨범이에요. 그걸 어떻게 조립할지는 각자 마음이죠. 손바닥에 눈알을 붙여도 되고요. 그런 상태가 매력적이지 않아요?
Q. 좋습니다. 이후에 ‘신 시티’가 나오는데요. 앞 트랙 바이브가 이어지다가 브레이크비트가 훅 들어오면서 진행되잖아요. 이건 어떻게 작업한 곡이에요?
윤: ‘신 시티’도 완전 초반에 작업한 곡이에요. ‘개미의 왕’이랑 거의 동시에 만들었고, 태홍 오빠랑 작업한 곡이죠. 제목 짓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신 시티’는 가장 난해할 수 있는 곡이에요. 말들 사이에 사다리가 너무 없잖아요. 타임워프 하듯 계속 장면을 건너뛰는 속도감이 있죠. 그 장면들을 한 단어에 모을 수 있는 단어가 뭘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신 시티’라는 제목이었어요. 범죄가 들끓는 도시처럼 매캐하고, 쾨쾨하고, 축축한 뒷도시 같은 느낌을 이미지화할 수 있다면, 곡의 바이브와 가사들이 그럴싸하게 소화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목을 되게 많이 바꾸긴 했는데, ‘신 시티’로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원래는 ‘씬 시티’로 하려고 했어요. 한글 표기를 원했거든요. 근데 ‘씬 시티’로 하니까 영화랑 검색이 같이 되더라고요. 경쟁을 해야 하니까… (웃음) 아무튼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Q. ‘개미의 왕’은 앞부분에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보니 소버해지지 않고 가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이 트랙은 어떤 그림이나 이미지를 주고 싶으셨나요?
윤: 이건 제가 인스타에 한 번 적어 올린 적도 있는데요. 에바에 탄 이카리 신지 같은 기분을 표현한 곡이에요.
<에반게리온> 같은 아포칼립스물 감독들이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겪어서 작품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럴 정도의 압박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있죠. 그 시기에 제가 딱 그 정도로 몰려 있었어요. 정말 신지가 된 듯한 기분.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같은. 근데 압박에서 벗어나면 지구가 멸망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절망적인 그림이에요.
저는 그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아포칼립스나 다크 히어로물. 그런 감각으로 분위기 자체를 삼엄하고 묵직하게 가져가고 싶었어요. 오갈 데 없는 것처럼, 내가 도망칠 곳이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비트가 사방에서 저를 조여오길 바랐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숨구멍을 찾으려는 과정이 그려져요. 비트와 저의 기막힌 공방전이 계속 이어지는데, 부르는 저도 힘이 들어오고 노래도 힘들어지는 게 다른 의미로 짜릿했죠. 그 뉘앙스가 듣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Q. 이미지로는 확실하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Mode in 5” 같은 가사는 <원피스>인가 했는데, 에바 얘기를 들으니까 더 에바스럽네요. 고후 님과 작업하셨다고 했잖아요. 어떤 아이디어를 들고 가신 거예요?
윤: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무식한 신스로 시작하고 싶다”고 했어요. 첫 데모를 만든 날 잡힌 콘셉트가 인트로의 신스, 그리고 디앤비(DnB, 드럼앤베이스)였고요. 거기에 제가 바로 멜로디를 올려버렸죠. 생각해 보면 뼈대는 첫 데모 때 이미 다 나왔어요. 나머지는 전부 디테일에 관한 거였고요. 그만큼 몰입도와 뉘앙스가 중요했던 곡이에요.
아마 이 곡에 쓰인 신스가 고후 오빠가 지금까지 만져본 신스 중 가장 ‘무식한’ 녀석일 거예요. 거기에 혜민이까지 합류하면서 소리가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고요.
Q. 목소리에 효과도 많이 주셨잖아요. 그건 어떤 의도였나요?
윤: 벌스 들어가면서 인트로랑 뉘앙스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보컬 톤도 아예 달랐으면 했어요.
제가 인트로를 부를 때 떠올린 이미지는 <스타크래프트> CD 커버에 나오는 여자였어요. 그 사람이 부르듯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게임이나 애니 오프닝에 짤막한 세계관 설명이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인간 이외의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후 리듬이 들어오면 목소리가 엄청 또랑또랑해지는데, 그게 되게 인간답잖아요. 탈압박하려는 부분이죠.
곡이 진행될수록 음역은 계속 올라가요. 마지막에 가장 높은 음역을 칠 때는 너무 높아서 절규하듯 부르게 되거든요. 그 뉘앙스가 녹음본에 잘 담긴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파트예요. 가사랑도 잘 맞아떨어지고요.
저는 보컬 톤을 잡을 때 “지금 어떤 가사를 부르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일체감이 제일 좋았던 파트가 ‘개미의 왕’ 후반부였어요.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라는 느낌으로 불렀죠.
Q. 재밌습니다. 이제 ‘개미의 왕’ 다음에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가독성을 위해 이하 ‘금붕어 1’)가 나오면서 환기되잖아요. 무엇을 의도하셨나요?
윤: 트랙 배치를 진짜 많이 바꿨어요. 장르가 매우 다양하니까요. 유기적인 흐름을 원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당황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래 트랙 배치에서는 ‘금붕어 1’ 구간에 좀 더 브레이킹한 트랙들이 몰려 있었어요. 근데 앨범을 계속 돌려보니까 ‘개미의 왕’이 끝나고 확 피로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에 ‘금붕어 1’로 창문을 열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산소가 너무 모자라잖아요. 계속 압박하니까요. 또 비슷한 사운드가 이어지면 사람들이 이 앨범을 끝까지 못 듣겠다 싶어서 넣었죠.
Q. 신지한테 레이를 한번 보여주는 거네요.
윤: 그렇죠. 일상 편이 한 번 나오는 느낌. 개인적으로 되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혜민이랑 고후 오빠도 같은 지점에서 공감해 줬고요.
Q. 이 곡도 올해의 R&B/Soul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는데요. 작업 과정을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 이건 가사가 먼저 있었고, 그다음에 아카펠라(멜로디)가 있었어요. 좀 오래 묵혀둔 파일인데 “지금이다” 싶어서 꺼낸 거죠. 개인적으로는 [개미의 왕]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랙이라고 생각해요.
Q. 너무 예쁜 곡이죠. 소울풀하기도 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슬쩍 들어가다가 후반에 사운드로 감정선을 잡아주잖아요. 멜로디도 예쁘고 단어들도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어요.
윤: 단어가 주는 감각은 다 다르잖아요. 느낌이 안 이어지는 단어들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렇게 나열됐을 때 전달되는 게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두 이어지는 단어로 가사를 써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그건 선입견이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좋고 예쁜 단어’를 전부 적어둔 글이었어요.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 금붕어’(이하 ‘금붕어 2’)랑 연결해서 말씀드리면, ‘금붕어 1’이 절반쯤 나왔을 때 혜민이랑 ‘금붕어 2’를 만들고 있었어요. ‘금붕어 1’의 아웃트로가 ‘금붕어 2’의 훅이잖아요. 사실 순서로 따지면 ‘금붕어 2’가 먼저 나왔고, 그 훅을 마지막에 ‘금붕어 1’ 아웃트로로 갖다 붙인 거예요. 그래서 두 곡은 시리즈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만들 때부터 “두 곡은 시리즈로 붙여둘 거다”라고 얘기해뒀고, 이름도 흡사하게 만들 거라고 해뒀어요. 그 두 곡 사이의 바느질을 고후 오빠랑 혜민이가 해준 거죠.
Q. 두 곡 제목에서 ‘는’과 ‘의’만 바뀌어서 배치하셨잖아요. 타자가 주체로 바뀌면서 시선도 바뀌는 느낌이 나는데요. 의도한 부분이 있나요?
윤: 딱히 의도하진 않았어요. 그냥 그것만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붙였죠. 근데 조사만 달라졌는데도 느낌이 훅 바뀌더라고요.
Q. 아까 이야기했던 ‘Funeral Freestyle’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윤: 제목은 제일 나중에 지었고요. 가사와 멜로디가 제일 빨리 나왔어요. 진짜 프리스타일처럼 툭 나왔거든요. 제가 거의 스피치하듯이 뱉으면서 나왔고요. 이 곡은 아카펠라가 먼저였어요. 멜로디를 먼저 짜둔 상태에서 트랙을 올린 케이스예요.
Q. 사운드가 뭄바톤 계열로 가는데, 이건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요?
윤: 고후 오빠 아이디어였어요. “뭄바톤 어때?” 했는데 혜민이가 “너무 좋은데요?” 해서 “해보자, 해보자” 하고 갔죠. 막상 해보니까 엄청 ‘위험’한 거예요. 리듬은 댄서블하게 나오는데 가사는 너무 어둡고… 그 대비가 오히려 기묘하고 재밌더라고요. 혜민이랑 그때 “진짜 내 장례식 때 이렇게 (신나게) 하면 좋겠다” 같은 얘기를 했어요.
Q. 그 ‘관짝소년단’ 밈 같은 느낌도 있죠.
윤: 맞아요. 관짝소년단. 약간 “축제처럼 장례를 치른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고,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됐던 기억이에요.
작업이란 게 셋이 모여도 안 풀리는 곡이 있는 반면, 어떤 곡은 셋이 싱크가 맞고, 공유한 것처럼 내 생각이 네 생각이 되는 때가 있잖아요. 이 곡이 딱 그랬어요. 그래서 타이틀로 뽑는 데도 큰 이견이 없었고요.
Q. “타인은 지옥” 같은 문장도 나오는데, 사르트르를 의식한 건지, 실제 체감에서 나온 건지 궁금해요.
윤: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요. 이때가 유달리 제 인생에서 좀 크게 얻어맞았던 시기라서 더 그랬어요. 저는 이 노래의 핵심 메시지가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삶은 벅차. 근데 이 짓을 모두가 하고 있다고? 이게 말이 돼?”
그러다 2절쯤 가면 “그래, 어차피 다 하고 있어. 어차피 다 지옥이야. 그럴 거면 우리 외롭지 않게 같이 있자”로 흘러가요. 말하자면 죽음의 기로에서 우연찮게 또 삶을 예찬하게 되는 딜레마죠. 그래서 이 곡은 가능한 신나게 하고 싶었어요.
Q. 앨범 전체가 모순되는 감정들이 계속 교차하는 느낌이 있어요.
윤: 제가 그런 걸 좋아하나 봐요. 어떤 감정이든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듣는 사람도 지치잖아요. 그래서 트랙 안에서 계속 균형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듣는 사람에게 너무 어두운 감정을 그대로 떠넘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 곡은 라이브하기도 제일 재밌을 것 같아요. 리듬이 진짜 재밌어요.
Q. 발음이나 딜리버리도 리듬에 맞게 신경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윤: 엄청 신경 썼어요. 이 노래는 ‘발음이 먼저 들리는 게 아니라 리듬이 먼저 들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발음/딜리버리보다 리듬이 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고, 그 기준으로 보컬 톤을 많이 잡았어요.
Q. ‘White Tee’는 어떻게 시작된 노래고, 왜 ‘흰 티’였나요?
윤: 이것도 가사가 먼저였어요. 출발 지점은 ‘little drummer boy’랑 가장 흡사한 곡이었고요. 그리고 저는 다른 노래들에서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쓰기도 해요. 예를 들면 ‘White Tee’와 ‘귀 있는 자’에 잠/밤에 대한 표현이 맞물려 있어요. ‘White Tee’에서 “지난 밤은 어쩐지 지난 삶보다 길었지” 같은 식이라면, ‘귀 있는 자’에는 “어떤 밤은 삶보다 길어” 같은 식으로요. 계속 잠에 대한 이야기예요.
‘White Tee’로 표현한 이유는, 잠을 못 자서 그 사람이 탁해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정말 깨끗하게 빨래해 주고 싶었거든요. 표백제 푼 물에 자근자근 밟아서 말끔하게 세탁해 주듯이, 맑았던 때를 다시 선물해 주고 싶은 심정이죠. 그리고 저는 사랑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걱정’이라고 생각해요. 걱정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행동이잖아요. 게임으로 치면 “걱정을 한다면 40% 확률로 사랑 스킬 발동” 같은 느낌? (웃음)
그래서 이 노래는 그냥 너무 걱정돼서 쓴 노래예요. “네가 너무 불쌍해, 내가 지켜줄게” 같은 말을, ‘사랑해’라는 단어 없이 쓰고 싶었어요. 사실 그 말이 ‘사랑해’인데, ‘사랑’이라고 말하기 싫었어요.
Q. 단어와 뉘앙스를 계속 변주하고 반복해 연결시키는 방식이 의도인가요?
윤: 연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귀 있는 자’랑 ‘White Tee’는 발음이 섞이는 구간이 있거든요. 가사를 몰라도 비슷한 발음이 들리면 귀에 남고, 다음 곡에서 또 비슷한 발음이 나오면 한 번 더 듣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같은 표현/발음이 다른 곡에서 완전히 다른 음악을 위해 어떻게 길러지는지, 그 지점이 재밌는 포인트가 될 거라고 봤고요. 가능한 앨범을 들으면서 지루하지 않기를 제일 바랐어요.
Q. 보컬적으로도 ‘White Tee’는 확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걸 고려했나요?
윤: 보컬적으로 재밌는 장치가 있어요.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반복되는 메인 테마가 있는데, 그걸 화자가 달라지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트로/아웃트로 보컬을 일부러 길게 늘려 느리게 불러놓고, 그걸 BPM을 빠르게 당겼어요. 그러면 기계로 스페드업한 것처럼 되게 기묘해지거든요. 그 뉘앙스가 마음에 들어서(고후 오빠 제안으로) 그런 방법을 써봤고요.
그리고 이 곡은 음역이 꽤 높잖아요. 근데 저는 그 정도로 나와줘야 오히려 부르기 편해요. 다만 ‘따뜻한 곡’에서 고음을 내지르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촘촘한 빌드가 중요했어요. 내가 여기서 질러도 사람들이 “갑자기 왜?” 하고 놀라지 않게, 앞뒤를 바느질하듯 잘 이어주는 걸 목표로 했어요.
저는 ‘귀 있는 자’까지 정말 많이 달려왔으니까, ‘White Tee’에서는 마음 편하게 긴장감을 풀고 그냥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실제로 ‘White Tee’를 제일 좋아한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Q. ‘Cabriolet (reprise)’는 오카시의 곡을 리프라이즈로 수록하셨잖아요. 원래 코러스로 참여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리프라이즈를 하게 되었나요?
윤: 매튜에게서 시작됐어요. 매튜가 “해당 앨범을 LP로 만들고 싶은데, LP반에 특별한 버전이 필요하다. 누나 벌스를 실어보고 싶다” 해서 제가 코러스를 살짝 깔고, 벌스도 만들었어요. 그런데 상황상 그 계획이 무산됐죠.
근데 저는 그 벌스가 너무 아까웠어요. ‘Cabriolet’ 자체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해석하기로는 ‘Cabriolet’은 꿈 같은 거예요. 이상, 슈퍼카, 내가 진짜 원했던 것들. 그 테마를 가져오니까 할 말이 많더라고요. “기껏 만든 벌스가 예쁜데 묻히는 건 아쉽다” 싶어서 영민(원곡 측)에게 연락해 “내 앨범에 리프라이즈로 넣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오카시 친구들이 흔쾌히 좋다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Q. 어떻게 재해석하셨나요?
리프라이즈는 ‘재배치’가 필요하잖아요. 똑같이 갈 수는 없으니까요. 고후 오빠랑 편곡을 시작했는데, 오빠는 이 노래를 듣고 ‘락킹한 사운드’가 계속 떠오른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벌스 1까지만 있었는데, 후반부 트랙이 완성되면서 위에 제가 다시 얹어 마무리한 거예요. 그래서 오카시의 ‘Cabriolet’과는 또 다른 ‘Cabriolet’이 나온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노래로 공연하는 상상을 제일 많이 했어요. 오토바이로 하이웨이를 달리는 듯한 쾌감이 있거든요. 옆에 아무도 없고, 뒤도 없이 그냥 쭉 달리는 기분. 그 시원한 쾌감을 사람들이 같이 느껴줬으면 해서, 공연에서 꼭 해보고 싶어요.
Q. 인트로 보이스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윤: 큰 의미는 없어요. 이전 곡에서 넘어갈 때 너무 갑자기 튀는 게 부자연스러울까 봐 고후 오빠가 배기음처럼 살짝 넣어줬는데, 그걸 만지면서 되게 좋은 질감이 됐어요.
Q. ‘카스테라’는 단어는 부드러운데 가사는 굉장히 세잖아요. 앨범을 ‘카스테라’로 끝낸 이유, 그리고 제목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윤: 이 곡도 ‘글’이 먼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글을 쓸 때 실제로 카스테라를 먹고 있었어요. 단순하죠. 근데 그날은 카스테라 한 조각이 너무 슬펐어요. 너무 외롭고 쓸쓸한 날이 있잖아요. 그때 “내 전화를 내가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문장이 정말 사무치게 나왔어요.
저는 친구도 많고, 연애도 해봤고, 동료도 있고, 엄마도 있는데…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있더라고요. 결국 그게 각자에게 온전히 주어진 삶의 무게라고 받아들이면서, 저를 토닥이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이 곡은 고후 오빠랑 시작부터 작업실에서 같이 만들었어요. 오빠가 우쿨렐레를 꺼내더라고요. 원래 ‘Funeral Freestyle’에 쓰려고 샀던 건데, 이번에 다시 꺼낸 거죠. 저도 장비 욕심이 계속 생기긴 해요. (웃음)
Q. 사운드 이야기도 해주세요.
우쿨렐레로 ‘카스테라’를 시작하니까 너무 색다르고, 오히려 더 쓸쓸해지더라고요. 제가 그리고 있던 그림, 바삭바삭한 말, 쓸쓸한 정서에 오빠가 깊이 공감해 준 것도 컸고요. 이후 나오는 엠비언스에 대한 아이디어도 막힘없이 이어졌는데, 우리가 비슷한 뉘앙스로 공명하고 있다는 증명 같았어요. 게다가 그날 새벽에 만나서 새벽에 끝났거든요. 새벽은 또 얼마나 쓸쓸해요. 그래서 이 곡은 토닥토닥으로 마무리해 주는 곡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 트랙(‘Cabriolet’)과 ‘카스테라’ 사이의 사운드/뉘앙스 간격이 크긴 해서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은 다 갑자기잖아요. 갑자기 외롭고, 갑자기 쓸쓸하고. 저는 그래서 마무리로 너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가사가 많이 울렸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누구나 비슷한 삶의 무게를 등에 업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앨범을 낸다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 같아요. 리스너 피드백으로 아티스트도 구원받고, 선순환을 이번에야 알았죠.
Q. 앨범을 끝까지 만들고 나서, 본인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나요?
윤: “고생 많았다.” 그리고 “지금 보니까 별거 아니었다.” 앞으로도 또 그럴 거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내가 한 선에서 만나는 느낌으로요. 그리고 “너는 틀리지 않아. 네가 생각한 게 맞아.”라고 말해줘야겠네요.
Q. 앨범이 테라피 같은 면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있나요? 다음 작업에서 ‘시리즈’처럼 더 풀어낼 수도 있을까요?
윤: …정말 솔직히 말하면, [개미의 왕] 하고 나서 저는 다 쏟아냈나 봐요.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저를 위한 노래를 쓰지 않을 것 같아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더 관찰하고 싶어요. 시리즈처럼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또 다른 탐구 시간이 올 것 같아서 기대돼요. 관찰자 시점의 저도 기대되고요.
Q. 마지막으로, 듣는 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윤: 대중음악상 노미네이트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제 나름의 해석/해설을 동봉했지만, 여러분만의 해석과 가공이 새로운 음악적 경험이 될 거라고 믿어요.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고, 어려우면—“뭔 말인지 모르겠으면”—그냥 좋을 대로 생각하셔도 저는 너무 좋아요. 그게 제 의도니까요.
아무쪼록 [개미의 왕] 많이 사랑해 주시고, 널리 널리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뵙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