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가 옆에는 좋은 프로듀서가 있다. 지난 8월, 흑인음악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앨범 다섯 장 역시 모두 그랬다. 목소리 하나 옆에 프로듀서 하나가 붙어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알앤비와 소울은 원래 짝의 음악이었으니까. 모타운에는 홀랜드-도지어-홀랜드가, 스택스에는 부커 티 앤드 디 엠지스가, 필라델피아에는 갬블과 허프가 있었다. 그리고 네오소울에는 에리카 바두가 일원으로 있던 소울쿼리언스가 있었다. 2000년 [Mama’s Gun]이 거기서 나왔다. 목소리 하나가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앨범도, 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됐다.
다섯 장 모두 음악가와 프로듀서가 합을 맞춘 결과지만, 그 합이 도착한 자리는 서로 전혀 다르다. 어떤 짝은 목소리를 해체해 질감으로 만들었고, 어떤 짝은 목소리를 리듬 뒤로 물러나게 했다. 옆에 누가 있었는지를 따라가면, 이들이 목소리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가 보일 것이다.
Erykah Badu & The Alchemist [Before the World Blows]

시작은 1999년의 비트 하나였다. 알케미스트가 맙 딥의 ’The Realest’를 위해 만든 그 트랙을 두고, 에리카 바두는 언젠가 저 위에 자기 목소리를 얹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와 작업해 온 콜드 크리스가 3년 전 그 말을 받아 둘을 이어줬고, LA의 스튜디오에서 ’Next 2 U’가 만들어졌다. 1999년의 비트를 노래로 만든 곡이 이 앨범의 출발점이다. 이후 18개월에 걸쳐 댈러스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녹음했다. 그렇게 2026년 8월 28일, 2010년 [New Amerykah Part Two (Return of the Ankh)] 이후 16년 만의 정규 앨범이 도착했다.
물론, 에리카 바두에게는 그 16년이 통째로 침묵은 아니었다. 2015년 믹스테이프 [But You Caint Use My Phone]이 있었고, DJ와 프로듀서로 무대에도 계속 섰다. 이 앨범도 사실 2025년 8월로 잡혔던 발매일이 약 1년 뒤로 밀렸다. 사정이 있었다기보다 서두를 생각이 없었던 쪽이다. 에리카 바두 본인의 말이 그렇다. “레이스도 아니고, 서두를 일도 아니다.” 대신 둘은 이 앨범의 음악을 무대에 먼저 올렸다. 그해 8월 ’아비 앤 앨런 투어’에서 미발매 앨범을 통째로 연주했고, 그날의 관객은 잠금 파우치에 휴대폰을 넣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역할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알케미스트가 보낸 루프를 바두는 해체하고 다시 짰다. 칼림바와 코드와 드럼을 겹겹이 얹어, 그 곡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때까지. 수록곡 대부분의 크레딧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이유다. 알케미스트는 “곡에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비켜섰다. 가사가, 의미가 드러나도록”이라고 밝혔다. 덕분에 먼지 낀 루프와 멜로트론 위로 목소리가 층층이 쌓인다. 한 매체는 이 마찰이 “두 사람을 더 낯설고, 더 따뜻하고,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적었다.
피처링진은 넓지만 산만하지 않다. 웨스트사이드 건과 얼 스웨트셔츠, 스티브 레이시와 썬더캣, 그리고 앨범 끝의 카마시 워싱턴까지.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재즈, 네오소울이 한 명단 안에 뒤섞여 있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서부 힙합의 레전드 프로듀서 DJ 퀵의 퍼커션도 곳곳에 깔려 있다. 공식 리드 싱글 ’Witch Doctor’는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자신의 신비주의적 자아를 되짚는 트랙으로, 뮤직비디오는 바두가 직접 연출했다.
긴 앨범인 만큼, 한 번에 통과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도 이 앨범은 설득력이 있다. 16년을 기다린 사람이 내놓은 것이 완결된 기념비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과 자기 음악에 손대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느 평론가의 문장이 이를 정확히 짚는다. “과거를 유리장 안에 모셔두는 유산 아티스트보다, 호기심 많고 선명하게 미완성인 바두가 지금 이 순간에 더 어울린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는 서두른 흔적이 없다. 옆에 그만큼 기다려준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Alabama Shakes [I Must Be Dreaming]

바두 옆에 알케미스트가 있었다면, 알라바마 셰이크스 옆에는 숀 에버렛이 있었다. 대신 멤버는 넷에서 셋으로 줄어 있었다. 2024년 12월, 앨라배마 터스컬루사의 한 무대에 알라바마 셰이크스가 예고 없이 올랐다. 2017년을 끝으로 무대에 서지 않았으니 7년이 넘어서였다. 이듬해 새 음악을 공식화했고, 그렇게 [I Must Be Dreaming]이 8월 28일에 도착했다. 2015년 [Sound & Color] 이후 11년 만이다.
그 사이 브리트니 하워드는 솔로로 두 장을 냈다. 2019년 [Jaime], 2024년 [What Now]. 밴드 없이 만든 두 장이고, 이번 앨범에서도 그 흔적이 들린다. 팀의 구성도 달라졌다. 창단 멤버였던 드러머 스티브 존슨이 2021년 팀을 떠나면서, 지금의 알라바마 셰이크스는 하워드와 기타리스트 히스 포그, 베이시스트 잭 코크렐 세 사람이 이끌고 있다. 이 말은, 이번 알라바마 셰이크스의 앨범은 드러머 없이 만든 첫 앨범인 셈이다.
녹음은 내슈빌의 사운드 엠포리엄과 블랙버드 스튜디오에서 이뤄졌고, 프로듀싱은 숀 에버렛과 밴드가 함께 맡았다. 사실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니다. 11년 전 [Sound & Color]에서 그는 믹싱과 엔지니어링을 맡아 그래미 최우수 엔지니어 앨범 상을 받았다. 그때 소리를 다듬던 사람이 이번에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셈이다.
앨범을 여는 ’Tea Time’부터 닫는 ’Tied to You’까지, 소리의 결은 질감이 풍부한 사이키델릭 소울에 가깝다. 어느 평론가는 이를 “의식을 잃지 않는 사이키델리아”라 불렀고, 하워드의 보컬을 두고는 “격렬하면서도 숨결 같고, 아득하면서도 끝내 생생하게 거기 있다”고 적었다. 싱글은 셋이 먼저 나왔다. 2025년 8월의 ‘Another Life’, 2026년 4월의 ‘American Dream’, 그리고 7월의 ’I Feel Hope Coming’이다. 마지막 곡을 두고 하워드는 정치적 거짓말을 꿰뚫어 볼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제목에 대해 하워드는 두 겹의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믿을 수 없이 아름답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앨범도 그렇게 들린다. 다섯 장 가운데 평단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앨범이기도 한데, 새로운 지평을 연 컴백작이라는 평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록 밴드의 앨범이 왜 여기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다만 장르가 무엇으로 적혀 있든, 브리트니 하워드가 11년을 들여 돌아온 자리는 소울이다.
Cleo Sol [Gentlewoman]

알라바마 셰이크스 옆에 숀 에버렛과 함께하는 멤버들이 있었다면, 클레오 솔 옆에는 한 사람뿐이다. 8월 20일, 그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 나왔다. 거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발매 후 한참이 지나도록 이 앨범을 다룬 언론 리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인터뷰도, 대형 캠페인도, 마케팅도 없다. 사실 이게 그의 태도다. 그가 몸담은 포에버 리빙 오리지널스는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 레이블이고, 그가 리드 보컬로 있는 밴드 솔트는 공연과 인터뷰 모두를 최소한으로 유지해 온 팀이기 때문이다.
1990년 런던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태어난 클레오 솔은 세르비아-스페인계 어머니와 자메이카계 아버지 아래, 노팅힐의 음악 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2008년 타이니 템파의 ’Tears’로 처음 이름을 올렸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음악을 쉬었다. 돌아온 뒤는 알려진 대로다. 리틀 심즈의 ‘Selfish’(2019)와 ‘Woman’(2021), 솔트의 여러 앨범, 그리고 Rose in the Dark에서 Mother를 거쳐, 같은 해에 두 장이 나온 [Heaven]과 Gold까지. 그는 스티비 원더와 질 스콧, 그리고 에리카 바두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만들었다. 에리카 바두의 이름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Gentlewoman]에서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인플로 하나뿐이다. 솔트를 이끄는 사람이자 그의 남편이다. 다만 작곡 크레딧은 조금 다르다. 크로닉스와 데이브 오쿠무, 릭 노웰스 같은 이름들이 함께 올라 있다. 프로듀싱은 한 사람이 했고, 곡은 여럿이 함께 썼다. ’I Only Look To You’로 문을 열고 ’Gentlewoman (Acknowledgement)’로 닫는 구조이며, 그 사이에 ‘Force Of Love’, ‘Let Me Cry’, ‘Family Ties’, ‘Their Smiles Are Not The Same’, ‘Honest Talk’, ‘All Because Of Love’, ‘Thank You’, ‘Little Things’ 같은 제목들이 놓인다. 목록만 훑어도 이 앨범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된다. 본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정직한 자리에서, 삶과 그 시련을 통과하며 힘을 찾는 것에 관한 기록이라고. 더 나은 날은 올 것이고, 오르내림 속에서도 사랑은 남는다고.
프로듀서가 한 사람이니 소리도 한쪽으로 모인다. 다만 모두가 그 소리를 편하게 듣는 것은 아니다. 어느 평론가는 “편곡의 안전함과 안정감이 나를 위로하기보다 오히려 숨 막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음악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리스너의 반응은 정반대다. 직접 듣고 말을 남긴 이들의 평은 훨씬 좋다. 평단에서는 조용했지만 듣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셈이다. 어쩌면 클레오 솔은 처음부터 그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Jorja Smith [What Are The Odds]

클레오 솔 옆의 인플로가 소리를 안으로 넣었다면, 졸자 스미스 옆의 P2J는 밖으로 열었다. 클레오 솔의 앨범이 나온 다음 날인 8월 21일, 졸자 스미스는 런던 빅토리아 파크의 올 포인츠 이스트 무대에 올랐다. 템스와 함께 이 축제의 유일한 공동 헤드라이너로 선 날이었고, 같은 날 세 번째 정규 [What Are The Odds]가 나왔다. 무대에 서는 날 댄스 사운드로 가득한 앨범을 내놓았다.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섯 장 가운데 가장 짧고 가장 빠른 앨범이다. 레이블은 데뷔 때부터 함께해 온 FAMM이고, 열두 곡의 프로듀서는 P2J로 비욘세와 FKA 트윅스를 거쳐 온 프로듀서다. 출발점은 전작 [Falling or Flying]에 실린 ’Little Things’였다. P2J가 공동 프로듀스한 그 한 곡에서 이번 앨범의 방향이 먼저 나왔다. 사운드의 목록은 UK 개러지와 그라임, 2스텝, UK 펑키, 소울풀 하우스, 아프로 하우스다. 졸자 스미스 본인은 “이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이다. 운전하면서, 들뜨면서 듣는 레코드다.“라 설명했다.
이 선택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1997년 웨스트미들랜즈 월솔에서 태어난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2016년 1월의 데뷔 싱글 ’Blue Lights’였고, 그 노래는 디지 라스칼의 ’Sirens’를 가져다 쓴 트랙이었다. 데뷔곡부터 영국 흑인음악의 도시 사운드를 끌어 쓴 셈이다. 이번 앨범의 ’This City’도 그렇다. 그라임 래퍼 데블린이 참여해 2010년 자신의 곡 ‘London City’ 벌스를 새로 녹음해 얹었다. 리드 싱글 ’Alive’에는 위즈키드가 함께했다.
물론, 춤추는 음악이라고 해서 가사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앨범은 중독과 싸우는 친구와의 우정, 배신, 사람들 앞에 놓인다는 일, 외로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이야기와 서사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둘을 나란히 놓은 셈이다. 발이, 몸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계속되는 앨범이다.
평단의 반응은 좋았다. 스미스의 최고작이라는 평이 나왔고, 역량의 정점에 선 아티스트라는 표현도 붙었다. UKG와 펑키, 하우스, 2스텝 사이를 신이 난 듯 자유롭게 오가기 때문이다. 반면 리스너의 반응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응집력이 부족하다거나 보컬의 존재감이 옅어졌다는 말이 적지 않게 나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졸자 스미스는 자신의 보컬을 앞세우지 않는 앨범이라는 걸 알면서 만들었다. 오래 함께해 온 프로듀서가 옆에 있었다.
Ravyn Lenae [Blue Island]

앞의 네 장에는 옆에 한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 한 장은 조금 다르다. 라빈 르네의 세 번째 정규에는 열 명이 넘는 프로듀서가 이름을 올렸다. 8월 7일, 소개하고자 한 다섯 장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앨범이다.
라빈 르네는 1999년 1월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시카고 예술고등학교에서 클래식을 공부했고, 스미노와 몬테 부커가 있는 제로 퍼티그 크루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4년 5월 [Bird’s Eye]의 리드 싱글로 나온 ’Love Me Not’은 한동안 조용했는데, 그해 10월 한 틱톡 이용자가 솔란지의 ’Losing You’와 섞은 매시업을 올리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그런 반응은 이듬해 1월에 가장 크게 퍼졌고, 곡은 빌보드 핫100 5위까지 올랐다. 뒤늦게 온 히트였다.
[Blue Island]는 그 히트로부터 1년 반 만에 나왔다. 애틀랜틱 레코즈에서 발매됐고, 노 아이디와 엘리 라이즈, 플라나피, 카림 리긴스, 사야 그레이를 비롯한 이름들이 크레딧에 올랐다. 이 명단을 한자리에 묶은 것이 총괄 프로듀서 DJ 다히다. 오래 함께해 온 사이이기도 하다. 싱글 ’Handle’을 두고 라빈 르네는 “우리는 바늘을 조금 더 밀고 싶었다. 좀 더 요란하고, 시끄럽고, 조금은 공격적이었으면 했다”라고 말했다. 주어가 ’우리’다. 싱글은 4월 3일 ’Reputation’과 ’Bobby’를 시작으로 5월 28일 ‘Handle’, 6월 26일 ’Saturday Night’까지 넉 장이 먼저 나왔다. ’Babygirl’에는 도이치가 함께한다.
프로듀서가 여럿이면 소리도 흩어지기 마련인데, 이 앨범은 그 흩어짐을 감추지 않는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목소리가 서는 자리도 달라진다. 인디 팝과 얼터너티브 R&B, 소프트 록, 그리고 과거의 소울이 한 앨범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평이 나왔다. 벨벳 같은 질감의, 1980년대에 기댄 프로덕션을 짚는 이도 있었다. 더 직설적인 표현도 있었다. 팝의 왕관을 노리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의 설명은 왕관 쪽이 아니다. 라빈 르네는 이 앨범을 정체성의 도착점이라 부르며, R&B와 팝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였다. 흑인성에 대한 어떤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자리라고 말이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대담한 프로덕션이 앨범의 망설임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는 평도 있었다. 칭찬과 아쉬움이 나란히 놓인 앨범인 셈이다. 평가가 어떻든, 다섯 장을 차례로 지나오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어느 목소리도 혼자 도착하지 않았다. 라빈 르네는 스물일곱 살에 자기 정체성의 도착점에 섰다고 말하지만, 그 도착점에도 열 명이 넘는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흑인음악은 무엇으로 흑인음악이 되는가. 적어도 혼자 정해지는 일은 아니라고, 지난 8월의 다섯 장이 말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