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원래 서울에서 술 마시고 놀던 소년이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 청년이 된 보잭입니다. 거리 문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Q.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에 노미네이트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노미네이트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A.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음악을 시작해서, 한대음은 어릴 때부터 시기별 한국 장르 음악을 공부할 수 있던 좋은 자료였어요. “이 시기엔 이런 분들이 있었구나” 하면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에게 한대음은 수상이나 노미네이트의 의미를 떠나 한국 음악사에서 큰 도움이 되는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제 이름 한 줄을 남기게 된 게 감사한 일입니다. 정말로요.

Q. 근황 토크부터 할까요? 저번 <넋이라도> 출연 후로 엄청 많은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은 뭐 하고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A. 정확히 1년 전이네요. 그때 화가 정말 많았는데, 아직도 화는 여전하고요. 당시엔 2025년에 대한 갈피가 크게 잡히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음악 외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크나큰 것을 얻은 한 해였어요. 그 교훈을 바탕으로 2026년을 잘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입니다. 작년 1112월부터 89월까지의 계획이 확실해져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Q. 수많은 파티와 행사를 열고, 플레잉을 하시잖아요. 파티 문화 하면 클럽 얘기가 빠질 수 없죠. 클럽 문화를 처음 접한 계기가 궁금해요.

A. 사람들이 저를 “맨날 클럽 다닌 친구”로 생각하는데, 제가 처음 간 클럽은 이태원에 있던 ‘터널’이었습니다. 스케이트보더들이 “너 음악 하는 사람이면 클럽도 가봐야지!” 해서 20살 11월에 같이 갔던 게 처음이었어요.

그날 바로 클럽에 빠진 건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이태원의 유명 테크노 클럽도 갔는데, 저와 친구를 입뺀시키더라고요. 나중에 남녀 수를 관리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클럽은 이런 곳이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사라졌다가, 눈 떠보니 지금 같은 삶이 됐네요.

Q. 클럽 문화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약 1년 뒤에 디제이풀 형이 저를 궁금해하며 먼저 연락을 줬어요. 같이 작업하기로 하고 여러 디제이들을 만나면서, 디제이들이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바라는지 알게 되자 매력을 느꼈고요. 많은 형·누나들의 권유로 저도 디제이를 시작하면서 클럽에 점차 녹아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클럽 같은 자리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웠어요. 음악·유흥뿐 아니라 그림 그리는 사람, 보드 타는 사람, 음악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놀기 위해” 모인다는 점이 저에겐 이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이성이나 비즈니스 목적 등 다양한 이유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다들 웃자고 오는 자리라서 클럽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고, 그 이후로 깊게 빠졌던 것 같아요.

Q. 해외 클럽과 한국 클럽의 차이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어떤 도시든 아무리 피곤해도 클럽은 한두 시간은 가보려고 합니다. 다만 큰 차이는 잘 못 느끼겠어요. 이성, 비즈니스, 핸드폰 하는 사람들… 어디나 비슷하더라고요. 제가 아직 깊게 안 들어갔거나 유흥을 크게 즐기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서울의 디제이나 다른 나라의 디제이나 음악이 좋은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면, 사람들이 술·담배·여자 말고도 다른 것에 더 취해 있다는 정도요.

Q. 보잭 님이 음악보다 더 좋아하는 게 보드라고 들었어요. 스케이트보드는 언제 처음 접했고, 어떻게 빠지게 됐나요?

A. 15살에 극심한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럴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봤죠. 그런데 당시 사회성이 많이 부족해서 단체 운동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다 동네 친구가 타던 작은 페니 크루저 보드를 빌려 타기 시작했고, 다운힐 롱보드도 타보고 스케이트보드도 타보다가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공부만 하던 아이가 그 자유로움을 느끼니 더 깊이 빠졌고요. 중2 말에 보드 동아리도 직접 만들 만큼 진심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토라진 적이 없어요. 음악이나 사람이 싫었던 적, 사랑하는 연인이 싫었던 적은 수도 없이 있어도 보드가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무서울 정도죠.

Q.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사랑합니다. 길을 걷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요. 저에게 그게 스케이트보드입니다.

Q. 요즘 보더들은 어디에 자주 모이나요?

A. 작년 8월 초에 보드 타다가 목디스크가 파열돼서 아직도 못 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더들과 소통이 줄었고요. 서울에 나온 뒤엔 혼자 타는 걸 즐기다 보니 두루두루 친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듣기로는 여전히 뚝섬, 컬트, 신촌처럼 예전부터 모이던 곳에 많이 있는 것 같아요.

Q. 거리 문화 자체도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클럽에서도 플레잉을 하셨지만 블록파티 활동이 자주 눈에 띄었어요. “이게 거리 문화구나”라고 처음 인식하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A. 클럽 문화와 거리 문화는 저에게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언더그라운드’라는 큰 공통분모는 있지만 성질이 아예 다릅니다. 한 번에 딱 온 건 아니고, 거리에서 파생된 것들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비보이, 그래피티, 블록파티,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들—하나로 묶이는 감성이 있다고 느꼈어요.

거칠고, 조금 공격적이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도 있고요. 언젠가 이 행위와 문화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보고 싶은 꿈이 있는데 아직 완전히 정립되진 않았습니다. 정확한 단어로는 못 말해도,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장면”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게 거리 문화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거리 문화의 매력이나,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갖는 특성이 있을까요?

A. 젊어요. 마인드든 행동이든요.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요. 사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잖아요. 스프레이를 사든, 보드를 타면서 생계를 위협할 리스크를 걸든요. 그럼에도 꿈과 열망을 위해 살아가고 그 행위를 하는 건 존중받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압구정 토끼굴 철거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제가 그래피티 문화에 깊숙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주변 형들, 미디어와 자료를 통해 그 공간의 의미가 크다는 걸 알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파주·일산에서 보드를 타왔어서 스팟이 사라지는 느낌이 뭔지 알아요.

저에게 크게 다가온 곳은 거의 처음 보드를 탔던 ‘운정엑스게임장’이라는 야외 콘크리트 X게임장이었는데요. 시설도 애매했고 보호대 같은 검열이 빡세서 자주 가진 않았지만, 리모델링으로 모든 게 바뀐다 했을 때도 아쉬웠습니다. 더 바보 같이 바뀔 걸 아니까.

토끼굴은 교체가 아니라 철거였고, 의미도 더 큰 공간이라는 걸 알기에 더 안타까웠습니다.

Q. 이번 노미네이트 앨범의 키워드 중 하나가 ‘서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보잭 님이 생각하는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요?

A. 아직 색깔이 없는, 형형색색이면서도 무색무취한 도시. 자신만의 것이 없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폄하하는 건 아니에요. 저만큼 서울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어디를 가든 “서울이 나아”, “서울에서 죽을 거야”라고 말하거든요.

다만 문화적·도시적 측면에서 서울은 아직 대단한 것이 많진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경복궁은 서울적이라기보다 한국적인 랜드마크라고 생각해요. 서울적인 것을 말하면 한강, 청계천처럼 도시사업과 맞물려 발전한 요소들이 떠오르는데,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아직 약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화적으로도 일본만 봐도 요소가 넘치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게 재밌습니다. 제한도 없고, 이길 과거의 영광도 없으니 저를 포함한 현 세대와 다음 세대가 만들어내지 않을까요.

Q. 해외를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서울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A. 안전하다는 점, 모국어가 아닌데도 영어 실력이 전체적으로 높은 점, 그리고 모든 게 정말 빠르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는 해외 친구들이 한국 여행을 온다면 부산과 제주를 더 추천하는 경우도 많아요.

Q. 보잭 님은 서울의 거리가 전달하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이 또한 아직은 무색무취하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모든 게 빠르다는 건 문화적으로 흡수력도 빠르다는 뜻이니까, 한순간에 확 바뀔 수도 있다고 봐요. 아무도 모르죠, 정말.

Q. 이제 앨범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UnderNationWide]라는 제목은 어떤 의도에서 나온 건가요?

A. 처음엔 엄청 거창했어요. 원래 거만한 제목을 짓고 싶진 않았는데, 올해 한국 나이로 25이고 금방 30, 40이 될 걸 아니까 “어릴 때 패기로 쎈 이름으로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Underground’와 ‘Worldwide’를 쓰고 싶었죠.

그런데 제 성격이 남 눈치도 보고 소심하다 보니 고민하다가, 그때도 지금도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털어놨습니다. 여자친구가 그 두 단어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해서 저도 동의했고요. 둘이 머리를 굴려서 나온 게 지금의 제목입니다.

영어가 애매하면 이상해 보이잖아요. 다행히 여자친구가 외국인이라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줘서 확정했습니다. 마야에게 고마움을 또 전합니다. 땡큐, 러뷰 마야.

Q. 장르적으로 여러 요소가 혼합된 인상을 받았는데, 구상 단계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셨나요?

A. 장르보다는 ‘믹스 CD’라는 개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도시의 레코드샵을 가든 저는 믹스 CD를 사왔어요. 바이닐이나 테이프도 멋있지만 2026년엔 관리와 실사용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CD는 아직 차 안에 CD 플레이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제 차도 전부 CD가 재생돼서 특히 믹스 CD를 많이 모았어요.

물론 유튜브나 애플뮤직/스포티파이로도 믹스셋을 들을 수 있지만, 믹스 CD는 넣어두면 다른 걸 틀기 번거롭잖아요. 그래서 귀찮아서라도 만든 디제이의 의도를 더 오래 즐기게 되는 방식이라 생각했고, 그 경험이 “나도 이런 앨범을 만들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믹스 CD/믹스 앨범 포맷으로 시작했어요. 형 DJ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시장성이 없다”, “앨범 내고 믹스셋을 따로 내는 게 낫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 마음대로 했습니다. 제 세대에게 믹스 CD 개념을 소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제가 ‘라이브셋 앨범’이란 이름을 붙여 의미가 조금 퇴색된 면이 있지만, 그래도 도전했고 많은 분들이 즐겨주셔서 작은 만족은 있습니다.

Q. 익스텐디드 버전을 함께 수록하셨는데, 그 매력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는 (Original Version)이라는 말을 쓰고 싶었는데, 유통사에서 음원사이트 표기상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표기로 정리됐고, 편하게 ‘원곡’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디제이 친구들이 “곡을 샀는데 BPM이 계속 조금씩 바뀌는 게 맞아?”라고 묻기도 하는데, 앨범이 라이브셋인 만큼 BPM이 계속 올라갑니다. 트실 분들이라면 익스텐디드 버전을 구매하는 걸 추천하고요. 듣는 건 취향대로 편하게요.

Q. “Like a B.J”에서 마이클 잭슨을 오마주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제 디스코그래피에서 댄스/일렉트로닉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앨범이 [I THINK YOU NEED SOME BREAK] (2023)였고, 타이틀 트랙 “Break/Junkie”는 제 삶을 바꿔준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목 대문자가 B와 J인 이유는 제가 ‘보잭’이라서고요. Dizzee Rascal의 “Bassline Junkie”도 떠올리며 만든 제목이었습니다.

이후 BJ를 활용한 제목을 또 쓰고 싶던 시기에 ‘Like a B.J’가 위트 있게 괜찮겠다 싶었는데, 멜로디에서 막혔어요. 혼자 “비제이… 비제이…” 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BJ인 ‘빌리 진(Billie Jean)’이 떠올라 넣어봤더니 소름 돋을 정도로 잘 맞아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미 게토테크 클래식 중에 DJ Funk의 ‘Work It’처럼 ‘빌리 진’을 샘플링한 트랙도 있고, 이번 앨범이 제가 좋아하는 하위 장르들을 총집합한 앨범이라 생각해서 오마주에 오마주를 더한, 애착 가는 곡이 됐습니다. 만들던 때가 밀라노였는데 하루 종일 이것만 들으면서 문워크 흉내 내며 걸어다녔어요.

Q. “Classic Seoul Break”은 제목부터 급박한 분위기가 재미있었어요. 어떤 이미지로 작업한 곡인가요?

A. “서울을 대표하는 사운드로 댄스 트랙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대표 사운드가 아직 없다는 결론이 나서, “한국어를 사용한 클럽 트랙을 다시 해보자”로 돌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힌트가 된 트랙이 DJ co.kr의 “Chorus Circus”(2020)였습니다. 인트로의 “하나, 둘, 셋, 넷!”뿐 아니라 옛 한국 음악 같은 추임새가 작게 깔리거든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 저도 “아싸—얼씨구—” 같은 보컬을 작게 넣고, 게토테크/게토하우스의 베이스라인과 여러 보컬을 활용해 완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가장 애정이 큰 곡이에요. 게토테크/게토하우스 거장들, DJ co.kr, 그리고 한국어를 접목시킨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분들께 리스펙을 전합니다.

Q. 앞으로 보잭 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올해 정말 많은 일들이 예정돼 있어요. 작년부터 “음악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하나 남은 게 있습니다. 키워주신 부모님을 제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자리에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거든요. 다가오는 5월 공개 프로젝트에서 아마 초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옛날에 다른 형들도 했던 거라 특별한 건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한국에서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5월 프로젝트 외에도 대부분 계획은 이미 짜여 있습니다. 웃긴 건 곡은 아직 다 안 나왔는데 하고 싶은 건 다 나와 있다는 거죠. 곡은 내일의 보잭이 차차 만들어가겠죠. 내년, 내후년까지도—보잭이라는 이름이 젊음을 잃기 전까지—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해오던 이야기들을 지키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이 앨범과 보잭이라는 인물은 거리 문화를 사랑하는 형·누나·친구·동생들이 있었기에 만들어졌습니다. 피처링의 ROOKIE, 앨범 커버의 JODAE, 책을 함께 만든 조수아, 비주얼 사진의 TORA PARK, 뮤직비디오의 김동희/살몬/연수, 앨범 관련 파티를 함께한 디제이 형·누나들과 클럽 베뉴들까지—한 명도 빠짐없이 스케이트보더/그래피티/비보이/디제이, 거리 문화에 진심인 분들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 앨범뿐 아니라 제가 해온 모든 일들이 마음에 드신다면, 음악뿐 아니라 ‘거리 문화’라는 형태에도 관심을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꼭 여러분 삶에 어떤 형태로든 큰 울림을 일으킬 겁니다. 진짜, 진심으로요.

Q.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ALL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