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사모키요타의 [고마워요, 아마드!]는 힙합 DJ가 사람들이 예상한 방향과 전혀 다른 식으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디제이들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장소의 분위기를 조율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술들이 사모 키요타의 이번 작품에서 연주의 영역에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재즈와 힙합의 관계를 프로덕션을 통해 풀어낸 [고마워요, 아마드!]는 재즈 팬과 힙합 팬 모두가 한 번 정도는 꼭 들어봐야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밈(meme)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문화도 유전자처럼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서 복제하고, 돌연변이를 통해 변화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밈이 문화 변천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음악 장르의 변천은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처럼 전개되어왔다. 가령 브레이크 비트는 펑크(Funk)의 드럼 브레이크 구간을 잘라 반복재생한 데에서 태어났다. 랩은 브레이크 비트 파티에서 MC가 추임새를 넣던 것이 변화하여 현대에 이르렀고, 브레이크 비트와 힙합의 뿌리인 펑크는 재즈에서 기원했다.
재즈의 발전사는 즉흥연주라는 테크닉이 주축을 이루었는데, 현장에서 주어진 테마를 연주자 개인이 적절히 변형하여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테마가 전개되고, 전개된 테마가 다시 변형되어 또 다른 무드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전개되는 악곡이다. 이런 재즈의 변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아마드 자말이다. 그는 1950-60년대에 미니멀한 연주를 기반으로 재즈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의 연주는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연주자에게 영향을 주며 즉흥적이고 정열적인 비밥의 반작용, 쿨재즈의 창시에 크게 기여했고, 나스 등 여러 아티스트가 그의 작업물을 샘플링하며 힙합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60년대 시각예술계에서는 모더니즘 예술 사이를 비집고 미니멀리즘 예술이 대두되었다. 모더니즘 시각예술에서는 규범이 중요했다. 가령 회화는 회화가 다른 무언가를 지칭하지 않고 회화 그 자체로 있어야했다. 그리고 회화의 가장 근원적 특성을 평면성이라고 여겼기에 작가들은 평면성을 탐구해야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 예술은 모더니즘 시각예술의 규범들을 파괴해버린다.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조각가인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감상을 위해 작품의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했다. 작품의 크기가 어정쩡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위치, 동선, 시간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변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작가의 의도를 대부분 거세해버린 단순한 형태의 조형물을 활용하여 그 면모를 더욱 강화했다. 이는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작품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을 지칭해야 한다는 규범에 의해 다른 무언가를 지칭할 수 있는 요소를 하나씩 배제하다가 결국 작가의 의도가 들어갈 수 없는 가장 순수한 형상의 무언가를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더불어 모더니즘 시기의 관객은 작가가 의도한 대로 작품을 감상하는 눈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존재로 간주되었고, 그 밖에 관객이 가진 다른 요소는 작품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 예술에서는 달랐다. 위와 같은 시도들 덕에 관객에게는 신체가 생겼고, 작가의 의도는 배제되었다. 즉, 감상 과정에서 관객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제 1970년대 힙합이 탄생하던 시기로 돌아가보자. 파티에 놀러온 사람들이 드럼 브레이크에 가장 신나게 춤을 추니, 이것만 반복 재생하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브레이크 비트가 태어났다. 어떤 관점에서 악곡은 하나의 테마를 작곡가의 의도대로 반복하거나 변형한 것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샘플링 과정에서 DJ는 악곡을 듣고 가장 춤추기 좋은 파트만 남기고 그밖의 것들을 전부 잘라낸다. 즉, 브레이크비트는 초기에 작가가 만들어둔 맥락의 대부분을 잘라내고 ’춤을 추게 만들겠다.’라는 단 하나의 의도만 남긴 장르였다. 그리고 이는 DJ라는 감상자, 더 나아가서 파티에 놀러온 손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정리해보자. 재즈는 연주자나 작곡가 등 작가의 해석과 의도에 따라 설계되는 장르였다. 그러나 힙합은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거세하고 단 하나의 형태만 남긴 감상자 중심의 예술에서 시작했다. 미니멀리즘 시각예술은 눈 만 떠다니는 유령이었던 관객에게 비로소 신체를 부여했고, 작품 감상 과정에서 관객의 역할을 강화했다. 그러니 힙합은 모더니즘의 시각예술 규범을 찔러 죽인 미니멀리즘과 같은 메스로 어머니 재즈의 배를 갈라 태어난 자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본래 한 몸이었던 두 장르를 완전히 분리된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즈와 힙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모 키요타의 [고마워요, 아마드!]는 자식과 어머니가 하나의 앨범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앨범이라 하겠다. 2장의 CD, 24개 트랙으로 구성된 본작은 프로덕션 면에서 명백히 재즈와 힙합의 관계를 다루고있다.
Disc 1은 즉흥연주, Disc 2는 샘플 플레잉을 중심으로 재즈 음악을 전개하며 두 장르의 연결고리를 드러내는데, 마치 연주하듯 샘플을 플레잉하는 것으로 “샘플링은 단순히 원곡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는 상업적 의도에서 태어난 기법인가?“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듯 보인다. 연주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곡을 끌고 나가되, 샘플링이 연주자의 공간을 충분히 존중하며 인터플레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DJ인 사모 키요타가 앨범 전체의 키를 잡으면서도 재즈라는 장르와 이를 구현하는 연주자에게 얼마나 큰 존중을 갖고 대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앨범 프로덕션 면에서 재즈와 힙합의 관계에 대한 은유가 엿보였다면, 앨범과 함께 제작된 책에서는 이에 대한 사모 키요타 개인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 Disc 1은 안과 율, Disc 2는 키미코 요타로와 정의 서사를 음악으로 각각 풀어냈는데, 책에서 모자관계로 묘사되는 키미코 요타로와 율의 이야기가 서사 후반부에 이어지며 재즈와 힙합, 음악 안에 살아가는 예술가, 그리고 사모 키요타 개인이 이를 대하는 태도가 복합적으로 얽혀 깊은 맛을 준다.
여기에 베이스 이성찬, 드럼 임창현, 키보드 조영재, 트럼펫 배선용, 바이올린 프리트(FRETE), 플룻과 팀발레스의 이규재, 색소폰, EWI, 보코더에 레이지쿠마라는 베테랑 연주자 라인업이 곡에 깊이를 더했다.
사모 키요타의 [고마워요, 아마드!]는 현대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힙합과 재즈라는 거대한 키워드를 집대성하는 동시에 블랙뮤직 씬에서 DJ라는 포지션을 재정의하는 앨범이다. 더불어 재즈와 힙합을 단순히 덧붙이는 데에서 끝내지 않고 둘을 촘촘히 엮어 새로운 결의 음악을 보여주려는 실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금 재즈와 힙합의 결합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보고싶다면, 사모 키요타의 [고마워요, 아마드!]를 필히 감상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