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요약해보죠. 사람은 태어나서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고,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과 사건은 머리 속에서 엉켜 기억이 됩니다. 배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경험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외에도 수많은 단어가 있겠지만요.
이 과정의 서두에 탄생이 있습니다. 시작이 없으면 그 뒤도 없으니까요.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 경험, 배움 등을 겪기 위해 태어났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철학자들이 여기에 대해 숱하게 고민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하이데거는 피투라는 단어를 통해 이걸 설명했죠. 우리가 태어난 건 이유도 목적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던져 진 거죠. 그럼 내던져진 우리는 그저 방황해야 할까요? 라쿠네라마의 [LUCHADOR]를 들어보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이런 방향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제목인 ’루차도르’는 멕시코 프로 레슬링인 ’루차 리브레’의 선수를 의미하고, ’루차 리브레’는 자유로운 싸움이라는 뜻이에요. 자유로운 싸움에 피투된 루차도르들은 ’승리’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승리’라는 제약을 걸어서 승리할 수 있는 길 외의 다른 선택지를 버리려고 하겠죠.
[LUCHADOR]도 극단적 자유가 가져오는 방황을 극복하는 서사가 담겼습니다. “Cool Perc”에서 피투된 화자는 ’앞’을 향합니다. 몸을 돌리면 북쪽도, 서쪽도, 남쪽도 모두 앞이 되죠. 무수한 선택지가 주는 생각에 압도당하는 “YARR”,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자각하는 “HUH”를 지나, “B”를 통해 이정표를 세워 삶을 기투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앞’을 향하지 않고 뱡향을 정한 거죠. 승리를 향해 자신을 기투한 루차도르처럼요.
다양한 남미 음악을 엮은 프로듀싱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삼바 기반 “B”에서 레게의 서브장르인 덥으로 물흐르듯 넘어가는 게 정말 재미있는데요. 레게 그루브 사이로 미묘하게 느껴지는 남미의 향취가 일품이죠. 심지어 트랙 이름도 “Dubby”인데요. 가사와 맞물려 꽤 격렬한 레슬링을 펼치는 곡입니다. 잘 만든 남미음악 기반 R&B를 느끼고싶으신가요? 라쿠네라마의 [LUCHADOR]를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