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1일 일리네어 레코즈의 [11:11]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타이틀 곡인 “연결고리”는 발매주차에 가온차트 96위에 들어섰다.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신기한 현상이다. [11:11] 발매 당시 일리네어 레코즈는 TV출연 이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블 설립 이전인 2006년에 도끼가 엠넷의 <M! PICK>에 최연소 비트메이커로서 출연한 것이 이들의 TV 출연 경력의 전부였다.

그렇게 일리네어는 더콰이엇, 도끼, 빈지노 세 사람의 카리스마와 트랩의 파괴력만으로 차트에 올라선 문화적 전환의 신호탄이 되었고 트랩 뮤직의 거침없는 언사, 선명한 자신감, 화려한 옷차림 등은 순식간에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후 힙합 음악은 약 10년 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대중 문화의 중심부로 다가섰다.

2010년대 한국에서 힙합이 유행한 이유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더콰이엇의 말을 빌리면, 힙합은 시대가 부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되돌아보자. 스마트폰 보급률은 13년도 11월부터 3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시기 전후로 페이스북이라는 신문물이 빠르게 퍼졌다. 페이스북은 국민 SNS로 불리던 네이트온과 싸이월드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서비스가 되었다. 동시에 진지충, 감성충, 설명충 등의 멸칭으로 소위 ’싸이월드 감성’이라 불리는 콘텐츠를 철저히 파괴했다.

싸이월드의 ’일촌’이 가족 간 거리를 나타내는 촌수 개념에서 온 단어라는 것에 주목해보면 2010년대의 시대정신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볼 수 있다. ’일촌’은 어원을 따졌을 때 너와 내가 가족처럼 가깝다는 뉘앙스가 드러나는 반면, ’팔로워’는 내가 그 사람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는 뉘앙스로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싸이월드의 콘텐츠가 처절하게 부서진 것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감정까지 쏟아낼 수 있었던 ’일촌’과 그럴 수 없는 ’팔로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포인트다. 그렇게 팔로워들은 일촌을 모두 해체하여 흑역사로 박제했고, 대한민국에 자기 PR 시대를 열었다.

페이스북 초기에 사람들은 관심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깨달아버렸다. 싸이월드 시절에 신경 쓰던 투데이보다 훨씬 더 즉각적이고 빠르게 관심도를 비교할 수 있는 ’좋아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 인터넷 사용자는 이미 네이트 판, 네이버 붐, 디시 인사이드 등 추천글 시스템이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경험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노출의 규모가 달랐다. 컴퓨터라는 공간 제약에서 벗어난 전국 단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위해 SNS 콘텐츠를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곧, 답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원하는 것을 주거나, 선망을 받거나.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에 노출되는 트래퍼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자기 PR 시대의 화신이었다. 난 이만큼 잘났고 이런 삶을 위해 막대한 노력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선망을 받았고, 하이햇을 극단적으로 쪼개는 등의 신선한 청각적 쾌감을 동시에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페이스북에는 트래퍼의 시뮬라크르가 범람했고, 자수성가로 성공을 일궈낸 원본의 서사는 희석됐다. 사람들은 트래퍼의 화려한 겉 모습만 차용해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카푸어 현상이 대표적이다.

10년대 후반부터는 이런 삶을 구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 키워드가 유행했고, 이는 더 많은 노력의 원천이 되었다. 덕분에 트래퍼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수성가 서사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게 성공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지기를 수 년, 사회에 피로감이 점점 쌓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2020년대를 맞았다.

2020년대의 우리는 아무리 일 해도 내 몸 누일 집 한 채도 마련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일할 곳이 없다. 성과 없는 노력의 끝에 번아웃을 맞이했고,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인식이 젊은 세대의 머리에 자리잡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국의 2022년의 우울증 환자 수는 4년 전인 2018년 대비 33% 증가했다. 특히 전체 우울증 환자 중 20대와 30대 비율은 34.4%고, 10대까지 포함하면 40.96%다. 중노년층 인구에 비해 젊은 층이 더 적은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를 감안하면 젊은 세대가 중노년층 보다 정신적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되어있다는 뜻이다. 이를 반영하듯 20대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자는 나날이 증가하고있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병들어버렸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의 경쟁 압력과 비교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가장 경쟁 압력이 심한 강남 3구의 청소년 정신과 방문자 수는 4년 동안 65% 증가했고, 한국의 청년층 자살률은 OECD 1위다. 어린 시절부터 겪은 극심한 경쟁압박으로 삶을 포기하거나, 쉬어버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드니 애를 낳지 않는다. 이런 무기력과 체념이 깊어지기 시작한 시기인 2021년,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발매되었다.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은 기본적으로 슈게이즈의 장르적 문법을 따르는 앨범이다. 평론가들은 기타에 이펙터를 겹겹이 쌓아 소리로 벽을 만드는 장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슈게이즈에서 보컬은 앞으로 튀어나오기 보다 소음의 벽 속에서 가라앉는 느낌을 전달한다. 세상이 쏟아내는 무수한 정보들, 그 앞에 놓인 소리의 벽, 그리고 벽 안에서 조용히 표류하는 젊은 세대까지. 파란 노을은 이들을 그러모아 젊은 세대의 자화상을 소리로 그렸다. 그렇게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은 젊은 음악 마니아의 표상이 되었다.

여기에 파란노을 본인의 블로그에 공개된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발매 시기 인터뷰를 통해 일본 인디펜던트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파란노을 앨범 발매 당시 일본은 여전히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일본의 인디펜던트 음악은 한국 청년들이 앞으로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들이 만든 음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포스트락 갤러리 외의 국내 마니아에게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발매 2~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2021년이 분위기가 전환의 과도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맨스티어가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쇼미더머니 9>는 머쉬베놈이라는 걸출한 루키와 릴보이를 앞세워 여전히 대중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또한 파란노을의 앨범 발매 후 방영된<쇼미더머니 10>은 비오를 발굴했고, “쉬어”, “리무진” 등의 곡을 차트에 올려놓으며 불꽃을 태웠다. 이찬혁의 “어느 새 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발언이 있었으나, 해당 발언은 파란노을 앨범 발매 이전이었다.

당시의 정서는 파란노을 버징의 중심이었던 포스트락 갤러리의 첨예한 의견 대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좋지 않다는 진영에서는 “찐따 감성”, “씹덕 감성”, “오글거린다” 등의 평가가 주류였는데, 이는 자기 PR의 시대가 열리며 싸이월드 감성과 묶어 철저히 짓밟았던 요소들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수많은 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끊임없이 불거져나오며 체념과 무기력이 주류 정서가 되었고, 틱톡발 일본 문화에 익숙한 어린 마니아층이 서서히 유입되며 역수입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껏 살펴본 한국의 사회상을 기반으로 보면, 젊은 세대는 심화된 경쟁 압박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어 더 이상 밖으로 표출할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 전체가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으니 어차피 앞으로 월급이 오르기는 글렀다고 판단한다.

그러니 워라밸을 찾고 생존을 위한 돈을 마련한 뒤, 남는 시간에 자신의 관심사에 몰두한다. 그렇게 본래 음지 문화였던 각종 서브 컬쳐의 크기가 커져 양지로 올라오고, 주류 문화에 대한 관심도는 이전보다 떨어지게 된다. 즉, 우리는 팽창의 트랩을 지나 축소의 슈게이즈를 맞았다.

앞으로 몇 년이 될 지 모를 시간 동안 우리는 더 조각나고, 더 내부로 침잠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 신라가 분열한 뒤 다시 고려로 합쳐진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 거대한 담론을 다시 한 번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갈망의 날, 가장 높이 일어난 물결이 다음 시대의 이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