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인디펜던트 뮤직 씬은 밴드맨들이 개척했습니다. 여러 책과 자료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그 시대를 엿볼 수 있죠. 래퍼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90년대부터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했었습니다. 가리온의 상징인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리듬”이라는 라인은 그런 뜻이고요.

앞서 언급한 가리온과 더불어 수많은 0세대 힙합 뮤지션 덕분에 홍대는 힙합 뮤지션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MP 체스판 위에서 모두의 마이크를 열었고, 윗잔다리 공원과 홍대 놀이터에서 사이퍼를 했죠. 브랜뉴와 매드홀릭에 모여 힙합 음악을 듣고, 작은 베뉴를 빌려 입장료 5천원하는 10시간짜리 라인업 공연을 마치고는 근처 가게에서 술 한 잔 걸치는 곳. 홍대 거리는 힙합 뮤지션들의 포장마차였고, 놀이터였고, 학교였고, 집이었습니다. 그게 10년 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리듬의 근간이었고 한국 힙합은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였죠.

COVID-19가 홍대 거리를 할퀴고 DJ 켄드릭스의 블루프린트가 사라졌습니다. 소버라는 힙합 베뉴가 새로 생겼지만 그마저 얼마 버티지 못했죠. 수많은 것들을 부숴버린 자연재해를 버틸 수 있었던 곳은 많지 않았죠. 브랜뉴도 바(Bar)만 남기고 클럽은 접어야했으니까요. 종종 일어나는 산불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하지만 그 산불이 때로는 새 생명의 탄생을 야기하죠. 컬리(Curlly)는 그 흐름 안에 있는 래퍼 중 하나고요.

컬리의 [KEEP CURLLY]는 힙합 뮤지션의 꿈을 안고 상경한 컬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상경한 컬리의 눈 앞에 보이는 건 전염병이 할퀴고 간 홍대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한국 힙합은 망했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져있던 상황이었어요. 컬리는 이걸 정공법으로 돌파합니다. 동료를 만들어 일을 벌이고, 절망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죠. 지극히 힙합 뮤지션다운 방식입니다.

힙합에 얼터너티브한 감각을 더한 오드플립(ODDFLIP)의 프로듀싱도 재미있는 감상포인트인데요. 컬리의 여유 넘치는 레이백을 다양한 그루브와 섞어내는 데 성공한 그의 노고가 돋보이는데, 특히 2번 트랙 “Are we there yet?“는 한 곡 안에서도 계속 바뀌는 그루브가 컬리의 그루브를 변화시키며 다채로운 청각적 쾌감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디젤(dsel), 앰비드잭(Ambid Jack), dramabo!damovie, Rakon, 비젼(B JYUN.), 큐 더 트럼펫(Q the trumpet)이 피처링으로 지원사격하여 앨범의 완성도를 더했죠.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얘기가 한참을 돌았지만, 결국 힙합의 새싹은 다시 자라났습니다. COVID-19가 지른 불 사이로 컬리 같은 래퍼들이 계속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컬리의 [KEEP CURLLY]를 들으면서 홍대 힙합의 넘치는 에너지를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