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전적으로 제(West Castle) 주장인데요. 하이퍼팝은 혼란을 노래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일단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이게 ’도’인지 ’미’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왜곡하고, 초반 40초 전개까지 잘 써먹던 테마를 유기하고 아예 다른 전개를 가져가기도 하죠. 아카펠라의 피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비틀어버리고, 음악의 중간에 뜬금 없는 내레이션을 끼워넣기도 하고요.

작가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선 대표적인 하이퍼팝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소피와 100 gecs의 로라 레스는 퀴어였죠. 그들이 인간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며 마주했을 ’정상성’과 본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느낄 감정은 체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우울감과 공허함만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는 비정상인가?“라는 물음에 끝없이 대답하며 혼란을 느꼈을 테니까요.

하이퍼팝 상업화 이후 대두된 디지코어 무브먼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디지코어로 이름을 날리는 아티스트들은 보통 나이가 어리잖아요? 이들은 중국이 부상하며 흔들어 놓은 팍스 아메리카나, 혼란을 틈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선포한 러시아, 팬데믹, AI 등장으로 대거 사라지는 일자리 등 수많은 혼란을 정서가 발달하는 시기에 겪어야 했죠.

동시에 기존 담론들이 계속 해체되는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노력담론이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건 10년대부터였죠. ’노오력이 부족하다.’라는 기성세대의 담론에 반항하던 사람들이 지금 20대와 30대에 포진해 있고, ’쉬었음 청년’이 되어 무언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잖아요.

물론 3포세대와 88만원 세대부터 시작하면 00년대 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노력하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자체는 굳건했으니까요. 그밖에도 중국에는 탕핑족이 있고,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가 있죠. 서구권에는 “okay boomer”라는 밈과 doomer가 이런 세대의 자화상을 잘 그려주고 있고요.

그런 이들이 가장 많이 체류하던 플랫폼이 틱톡이었습니다. 음악을 포함한 30초 안팎의 짧은 동영상은 넘기다보면 마치 하이퍼팝의 급변하는 테마처럼 노래가 바뀌죠. 휴대전화 스피커 특유의 왜곡은 소리에 자체적으로 노이즈를 끼워넣고요. 그러니까 하이퍼팝은 이들이 가장 많이 소비한 플랫폼을 닮아있기도 한 거예요.

정리해볼까요? 우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문법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정서 발달 시기에 기존 질서가 파괴되는 현실을 계속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투영될 수 있는 수많은 정서를 하나로 묶는 단어가 혼란이고, 하이퍼팝이 드러내는 음악적 특징은 대체로 혼란한 것들이 많죠. 그래서 하이퍼팝이 음악적으로 투영하는 정서는 ’혼란’이라는 게 제 주장의 요지예요. 그런 의미에서 시온의 [eigensinn]은 지금껏 한국에서 나온 하이퍼팝/디지코어를 표방하는 작품 중에 가장 장르적 매력을 잘 살린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1번 트랙 “eigensinn”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즈에서 사용할 법한 주법의 신스 사운드가 DnB 그루브 위를 내달립니다. 그러다가 40초 부근에 테크노나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리듬으로 바뀌어 아예 새로운 국면으로 보여주고요. 2번 트랙 “celeste”의 후반부는 아예 록/메탈스러운 진행을 보여주고요. 그밖에 수많은 부분에서 시온이 이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 산적해있어요.

요즘 친구들의 음악을 이해해보고 싶으시다면, 우선 시온의 [eigensinn]을 들어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쪽 음악 중에서는 꽤 순한맛이면서 상당히 잘 만든 앨범이거든요.